LG전자가 3억달러(약 3,500억원)를 투입하는 북미 신사옥을 미국 뉴저지주에 착공하며 투자 확대에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투자 압박을 받는 한국 기업들이 미국 투자 규모를 본격적으로 확장하는 모양새다. 이미 지난해 기준 한국의 대(對)미국 투자 금액은 5년 새 최대치를 기록했다.
LG전자는 7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잉글우드클립스에서 조주완 북미지역대표 겸 미국법인장(전무), 제임스 테데스코 버겐카운티장, 마리오 크랜작 잉글우드클립스 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신사옥 기공식을 개최했다.
LG전자의 신사옥 부지는 면적이 약 11만㎡로 축구장 5개가 거뜬히 들어갈 만큼 넓다. LG는 오는 2019년 말까지 이곳에 최첨단 친환경 빌딩을 완공하기 위해 3억달러를 투자하고 연간 2,000명을 고용할 계획이다.
7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잉글우드에서 열린 LG전자 북미 신사옥 기공식에 참석한 조주완(왼쪽 4번째) LG전자 북미지역대표 겸 미국법인장(전무)과 폴 살로(맨 오른쪽) 뉴저지주 상원의원 등 관계자들이 첫 삽을 뜨고 있다. /사진제공=LG전자
LG측은 2009년부터 신사옥 건립을 추진하며 당초 건물을 8층으로 설계했다. 하지만 환경 문제를 우려하는 주민들의 반발을 받자 4~5층의 캠퍼스형 건물로 설계를 변경하면서 주변에 1,500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고 건물 지붕에는 태양광패널을 설치하기로 했다. 조주완 LG전자 북미 대표는 “신사옥이 완공되면 뉴저지 지역에만 연간 2,600만달러 이상의 직접적 경제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는 이번 신사옥 착공 외에 미 가전공장 투자 결정도 임박한 상황이다. LG전자는 올 상반기 중 투자계획을 확정한다는 목표로 테네시 등 몇몇 주 정부와 투자혜택 등을 놓고 협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 만들 공장은 북미 지역에서 판매되는 냉장고·세탁기 등 생활가전을 생산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도 연산 100만~200만대의 냉장고·세탁기를 생산하는 공장을 미국에 지어 이르면 내년 초 가동한다는 목표다. 현재 사우스캐롤라이나주가 유력한 공장 후보지로 검토되고 있으며 삼성전자는 앨라배마 등 다른 지역도 물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도 2021년까지 5년간 31억달러(약 3조5,000억원)를 미국에 투자하면서 앨라배마에 이은 미국 2공장을 건설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시장 수요를 살핀 뒤 공장 신설 계획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제너럴모터스(GM)·폭스콘·포드자동차·캐리어 같은 외국 기업 상당수는 이미 멕시코 등지의 공장 신증설 계획을 접고 미국 투자계획을 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기업들의 미국 투자를 압박했다. 미국에 비해 제조업 인건비가 10분의1 수준밖에 안 되는 멕시코나 중국·베트남에서 유입되는 값싼 제품에 40%를 넘나드는 관세를 매기고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지어 직접 제품을 만들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미국 내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강경한 보호무역주의다. 국내 한 대기업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는 완제품 조립 공장뿐만 아니라 아예 부품·소재 공장까지 미국에 지으라고 요구하고 있어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도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그나마 최근 미국에 공장을 지은 타이어 업계는 안도하는 눈치다. 한국타이어는 올 상반기 중 테네시주 공장을 완공하고 현지에서 1,000명 이상을 채용할 계획이다. 총 8억달러가 투입되는 한국타이어 테네시 공장은 연간 타이어 550만본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금호타이어도 지난해 5월 4억5,000만달러를 들여 조지아주에 연간 400만본 규모의 타이어 공장을 완공하고 400여명을 채용했다.
기업들의 미국행 러시가 잇따르는 가운데 지난해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 규모는 3·4분기까지 누적 기준 69억4,000만달러를 기록했다고 한국무역협회 뉴욕지부가 8일 공개했다. 아직 집계되지 않은 4·4분기 투자액을 빼더라도 2011년의 73억1,000만달러 이후 5년 새 가장 많다. 반면 미국 기업의 한국 투자는 2015년 54억8,000만달러에서 지난해 38억8,000만달러로 30% 가까이 줄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은 갈수록 견고해지는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다”면서 “높은 인건비로 수익성 악화가 뻔히 예상되는 결정이지만 다른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뉴욕=손철특파원runiron@sedaily.com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