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불황과 글로벌 경쟁으로 지친 기업들에게 경영 자율성마저 제한하면 자칫 ‘테이블 데스’(수술 도중 환자가 숨지는 것) 상태에 빠질까 걱정됩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8일 최근 국회가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에 대한 경제계 의견을 담은 ‘상의 리포트’를 통해 문제점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상의는 8∼9일 이틀간 국회를 방문해 이 보고서를 각 정당에 전달할 예정이다.
상의는 보고서에서 “일부 기업들이 상장사를 개인회사처럼 운영하거나, 분식회계와 편법상속, 회사 기회 유용 등의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점은 극복돼야 할 구시대적 관행”이라며 “경제계도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입법 취지에는 공감한다”고 밝혔다.
다만 상의는 상법 개정안 중 △감사위원 분리 선임 △집중투표제 의무화 △근로자대표 등 추천자 사외이사 의무선임 △다중대표소송 도입 △전자투표제 의무화 △자사주 처분규제 부활 등 6개 항목이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을 훼손하는 등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상의는 감사위원 분리 선임이나 집중투표제 의무화 조항의 경우 ‘1주 1의결권’이란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을 훼손하고, 소액주주 대신 투기펀드만 활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근로자대표 등 추천자 사외이사 의무 선임은 회사 발전보다 근로자, 소액주주 이익만 주장해 의사결정 지연과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중대표소송 도입 조항은 주주 간 이해가 상충할 소지가 있고 소송 리스크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전자투표제 의무화나 자사주 처분규제 부활 등의 조항도 악의적 루머 공격 때 투표 쏠림이 나타나거나 경영권 방어가 힘들어져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상의는 “현행 기업지배구조 관련제도는 이미 선진국 수준인 만큼 제도를 계속 강화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다”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일인 만큼 제도강화로 추구할 것과 시장 감시로 할 것을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말 국내에도 기관투자자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한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된 만큼 이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후진국에서는 규제를 옥상옥식으로 아무리 쌓아도 잘 작동되지 않는 반면 선진국에서는 규제 대신 시장참여주체들의 자율규범에 의해 최선의 관행을 만들어나가고 있다”면서 “우리도 기관투자자들이 기업을 감시하고,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기업도 이에 따를 수밖에 없고, 기업지배구조와 관련한 주요이슈들도 하나씩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성행경기자 sain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