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이는 환율 갈길 잃은 시장] 손놓은 정부에 투기 세력들 기승...외환시장 '꼬리'가 '몸통' 흔든다

작년 4분기 원화약세 베팅 NDF 264억弗 사상최대
투기수요 거래량이 현물환 거래 앞지르는 기현상도

우리 외환시장이 역외시장 투기꾼의 놀이터로 전락하고 있다. 역외투자자가 ‘달러 강세-원화 약세’에 베팅하면서 지난해 10월 1,130원 선이던 원·달러 환율은 연말에 1,210원까지 급격히 올랐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약(弱)달러 선언에 대규모 손절매가 쏟아졌고 한 달 새 다시 원·달러 환율은 1,130원대로 내려앉았다. 국내 현물환시장에서 외부충격을 줄여야 하는 당국이 미세조정(스무딩 오퍼레이션) 등의 대응을 하지 못하면서 꼬리(역외 선물환시장)가 몸통(역내 현물환시장)을 흔드는 상황도 연출되고 있다.

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4·4분기 비거주자가 국내 외국환은행과 거래한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의 순매입 규모는 264억6,000만달러였다. 지난 1999년 NDF 시장이 개설된 후 사상 최대 규모다.

외국인이 NDF를 샀다는 것은 앞으로 원화 가치가 떨어진다는 데 베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NDF는 일반적인 선물환과 달리 특정 국가 통화에 대해 계약 시 선물 환율과 만기 시 현물 환율의 차액만을 달러화로 정산하는 계약을 말한다. 쉽게 말해 원·달러 환율 1,100원일 때 NDF 1개월물에 대해 1달러어치 매입계약을 맺은 뒤 원·달러 환율이 1,200원으로 오를 경우 이를 팔아 100원의 차액을 달러화로 받는 방식이다.


투기수요로 역외시장이 몸집을 키우고 있지만 현물환시장은 되레 거래가 위축되는 기현상도 나타난다. 지난해 4·4분기 NDF 일평균 거래량은 80억3,000만달러로 현물환 거래량보다 10억달러 많았다. 50억~60억달러 선에서 머물던 NDF 거래량이 80억달러까지 느는 사이 80억~90억달러씩 거래되던 현물환 거래량은 70억달러 수준까지 떨어진 것. 분기 기준으로 NDF 거래량이 현물환 거래를 앞지른 것은 위안화 절하 충격이 있었던 지난해 1·4분기 NDF 거래량이 8,000만달러 많았던 것을 제외하면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2·4분기~2009년 1·4분기) 이후 처음이다.

외환시장에서는 이처럼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왝더독(wag the dog)’ 현상의 일차적 원인은 역외투기지만 이를 막지 못하는 당국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환율조작국 지정 카드를 쥔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현물환시장에 개입하지 못하는 사이 투기꾼이 맘 놓고 활개를 치고 있다는 것이다.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현물환시장에서 개입을 통해 지지선을 지키는 당국이 사라진 상황이니 투기꾼이 판을 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가격 변수가 널뛰면 의사결정을 시급히 해야 하는 수출기업들만 죽어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투기수요로 인한 충격을 줄이는 당국의 역할이 무엇보다 필요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NDF를 규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선물환 포지션 한도를 낮추는 것뿐인데 규정을 바꾸는 동안 환율의 방향이 바뀔 수 있다”며 “방안을 마련하되 뾰족한 수단이 없으면 현물환시장 개입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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