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비비안은 ‘비비안’으로 유명한 여성 속옷 전문기업으로, 창업주인 남상수 명예회장은 1925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났다. 남 명예회장은 우리나라에 속옷 산업이 전무했던 1957년 여성 속옷 전문기업인 남영비비안을 설립해 여성 속옷 사업을 시작, 국내 대표적인 여성 속옷 전문 기업으로 키워냈다.
고인은 1950년대 여성들에게 서양식 의복이 점차 익숙해지면서 좀 더 예쁜 맵시를 위해서는 여성 속옷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일찌감치 국내 여성 속옷 시장을 개척했다. 고쟁이나 광목으로 된 속옷을 착용하던 당시 여성들에게 브래지어, 거들 등 현재와 같은 화운데이션 란제리를 소개함으로써 여성들의 의생활에 변화를 가져왔다. 대표 브랜드인 ‘비비안’을 비롯해 유통별, 아이템별로 다양한 브랜드를 육성하며 국내 여성 속옷 업계를 이끌어왔다.
대표적으로 1950년대부터 한국 스타킹 시장에 변화를 불러왔다. 1958년 우리나라 최초의 스타킹으로 알려진 ‘무궁화’ 스타킹을 생산했다.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은 뻣뻣한 목양말을 주로 신었고, 스타킹이 소개되긴 했지만 외국산 제품이 암시장을 통해 아주 소량 들어오고 있었다. 남 명예회장은 ‘무궁화 스타킹’을 출시한데 이어 한국 스타킹 역사에 최초로 남을 제품들을 잇따라 냈다.
고인은 스타킹에 이어 1990년대에는 브래지어 시장에 혁신을 일으킨 주역이다. 1995년 남영비비안은 국내 최초로 볼륨업 패드를 사용한 ‘볼륨업 브라’를 출시했다. 볼륨업 브라는 볼륨감 있는 몸매가 아름답다는 새로운 인식과 함께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출시 10개월 만에 100만개가 판매됐다.
남 명예회장은 한국 무역 산업을 일으킨 무역 1세대이기도 하다. 고인은 1954년 무역회사인 남영산업㈜을 설립하고, 미국과 유럽, 일본 등지에 속옷과 스타킹을 수출했다. 일본기업이 장악하고 있던 미국시장을 공략해 큰 성공을 거뒀고, 1980년대에는 미국 시장에 연간 800만장의 브래지어를 수출했다. 이는 당시 미국 여성 10명 중 1명이 남영산업이 수출한 브래지어를 입은 꼴이다.
그는 한국 수출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출의 날 산업 포장(1973년)과 상공의 날 대통령표창(1975년), 동탑(1980년), 은탑(1985년), 금탑(1992년) 산업 훈장을 수훈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순 여사와 남석우 남영비비안 회장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이며 발인은 2월11일, 장지는 경기도 화성 선산이다. /박윤선기자 sepy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