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수 남영비비안 명예회장 별세] 편안함 넘어 아름다움까지…여성 속옷 시장 개척한 '혁명가'

거들 등 화운데이션 란제리
1957년 국내에 처음 소개
여성 옷맵시·의생활 혁신 주도
고탄력 스타킹·볼륨업 브라…
출시 제품마다 '히트' 행진
글로벌 시장 평정한 무역 1세대
국내 인기 美·홍콩 등서도 이어
평소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조
연암장학회 세워 6,000여명 후원



‘주름 장식의 원피스와 벨벳 스커트, 다리 라인을 드러내는 바지까지.’

지난 1950년대 우리나라 여성들은 이미 서양식 복장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속옷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펑퍼짐한 고쟁이나 광목으로 지은 속옷 등이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전부였던 것. 몸매를 드러내는 서양식 옷에 커다랗고 뻣뻣한 속옷을 입으니 옷맵시가 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속옷 산업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1957년. 여성 속옷 전문기업인 남영비비안을 설립해 브래지어와 거들 등 현재와 같은 ‘화운데이션 란제리’를 국내에 처음 소개하며 여성들의 의생활에 혁신을 가져온 남상수(사진) 남영비비안 명예회장이 9일 0시22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1925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난 그는 ‘여성 속옷의 혁명가’로 불린다. 대표적인 것이 1950년대 스타킹 시장의 변혁을 주도한 것. 1958년 우리나라 최초의 스타킹 ‘무궁화’에 이어 봉제선이 없는 ‘심리스 스타킹’과 ‘고탄력 스타킹’까지 잇따라 내놓아 한국 스타킹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은 뻣뻣한 목양말을 주로 신었고 스타킹이 소개되기는 했지만 외국산 제품이 암시장을 통해 소량 들어오고 있던 때였다. 1962년 출시된 심리스 스타킹은 재봉선이 감쪽같이 사라진 스타킹으로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팔려 나갔다. 1983년에는 한국 최초의 ‘고탄력 스타킹’을 출시해 스타킹 소재의 혁신을 불러왔다. 스판덱스사를 소재로 해 신축성을 강화한 고탄력 스타킹은 편리함을 느낀 여성들의 입소문을 타고 히트 제품으로 거듭났다.

1990년대에는 브래지어 시장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1995년과 1998년 출시한 ‘볼륨업 브라’와 ‘노브라’가 대표적이다. 국내 최초로 볼륨업 패드를 사용한 볼륨업 브라는 출시 10개월 만에 100만개가 판매됐다. 볼륨감 있는 몸매가 아름답다는 새로운 인식과 함께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겉으로 자국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속옷인 노브라는 몸에 밀착되는 ‘쫄티’와 시스루룩이 유행하면서 출시 두 달 만에 10만개가 팔렸다.

고인은 한국 무역산업을 일으킨 무역 1세대이기도 하다. 1954년 무역회사인 남영산업㈜을 설립했다. 1989년 인도네시아에 이어 1992년 중국 현지에 속옷 생산법인을 설립해 미국과 유럽·일본 등지에 속옷과 스타킹을 수출했다. 그 결과 일본 기업이 장악하고 있던 미국 시장을 공략해 큰 성공을 거뒀고 1980년대에는 미국 시장에 연간 800만장의 브래지어를 수출했다. 당시 미국 여성 10명 중 1명은 남영산업이 수출한 브래지어를 입었다. 1970년대에는 홍콩 스타킹 시장의 30%를 점유했다.

평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고인은 성장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이 향후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확고한 신념 아래 1976년 ‘연암장학회’를 만들었다. 그의 호인 ‘연암(然菴)’을 따 이름지어진 재단법인 연암장학회는 현재까지 경제적인 이유로 학업 수행이 어려운 학생 6,000여명에게 약 48억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순 여사와 남석우 남영비비안 회장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이며 발인은 11일, 장지는 경기도 화성 선산이다. /박윤선기자 sep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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