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안 내용을 떠나 일단 절차적 타당성부터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 입법과 달리 의원 입법은 이렇다 할 여론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지만 기업 활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경제 법안을 당사자인 기업을 배제한 채 일방통행식으로 처리하려는 것은 의회의 폭거나 마찬가지다. 대한상의 지도부가 오죽 답답했으면 국회로 직접 달려가 개정안에 대한 기업의 우려를 전달했을까 싶다.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자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상법개정안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기업 옥죄기 법안이다. 겉으로야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한다는 것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기업 경영권을 뿌리째 흔들겠다는 것과 같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기업 규제를 어떻게 하면 풀어줘 일자리를 늘릴까 골몰하는 마당에 우리만 거꾸로 가니 가슴이 먹먹할 뿐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집중투표제 의무화다. 예컨대 이사 3명을 선임할 때 주식 1주를 보유한 주주가 1명에게 3표를 던지는 방식이다. 비록 여야 합의에 이르지 않았으나 원안대로 처리되면 기업에 치명적이다.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의 권리 보호와 기업 감시라는 본연의 순기능보다 투기자본 등의 기업 경영권 흔들기 부작용이 크다는 점은 수없이 지적돼왔다. 2003년 SK 지배력을 흔든 다음 막대한 차액을 챙기고 떠난 소버린이 집중투표제 도입을 집요하게 요구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주식 1%(상장사는 0.1%) 이상 보유한 주주가 이사 책임을 묻는 소송을 허용하는 다중대표소송제는 기업 투자를 위축시키고 소송 남용을 부추길 우려가 크다. 이외에도 기업이 처한 어려운 현실은 아랑곳하지 않는 개악 조항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기업 경영권이 위협받도록 개악하고 투자를 늘릴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와 다름없다. 이러고도 틈만 나면 일자리 창출에 나서달라고 주문하는 정치권의 몰염치에 기가 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