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법조계에 따르면 특검은 지난 6일과 8일 삼성화재를 비롯해 삼성전자·삼성생명·삼성물산·에스원 등 삼성 계열회사 5곳의 자금담당 임원을 비공개 소환해 조사했다. 제일기획 자금담당 임원도 조만간 불러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계열사의 공통점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출연했다는 점이다. 특검은 삼성그룹이 계열사 6곳을 동원해 두 재단에 목돈을 출연한 배경과 과정 등에 대해 캐물었다.
특검은 또 전날 김학현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청와대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돕기 위해 공정위를 동원한 것이 아닌지 캐물었다. 특검은 2015년 7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공정위가 신규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해 삼성SDI에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2.6%)를 처분하도록 한 조치에 주목하고 있다. 특검은 공정위가 내부적으로 삼성SDI가 더 많은 주식 물량을 처분할 필요가 있다고 검토했는데 청와대의 지시로 처분 규모를 축소한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공정위의 지분 매각 결정이 삼성의 최순실(61)씨 모녀 지원 이후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이재용→최순실→박근혜’ 뇌물 수사의 유력 증거로 보고 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법원이 앞서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범죄사실이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며 “최근 특검이 삼성 계열회사 임원을 불러 조사하는 이유도 뇌물 혐의의 주가 되는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문제와 연관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검이 삼성의 특혜 의혹과 관련해 최근 계열사 임원을 줄소환하고 공정위 고위관계자를 압수수색한 것은 16일까지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결정한다는 내부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검의 이 같은 로드맵이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할지를 판가름할 핵심 과정인 박 대통령 대면조사가 삐걱거리면서 심지어 무산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검은 이날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거부 의사를 전해왔다”며 “대면조사 계획을 외부로 유출한 적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고 밝혔다. 특검은 “대면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현재 박 대통령 대면조사를 강제할 뾰족한 수단도 없다. 게다가 뇌물수수의 한 축인 최씨는 이날 특검에 출석했지만 여전히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법원이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뇌물을 받은 사람에 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는데 그 당사자로 지목된 박 대통령과 최씨에 대한 조사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청와대와 최씨가 한꺼번에 수사 지연전략으로 나올 경우 특검이 취할 수 있는 카드는 거의 없다”며 “특검이 삼성 특혜 의혹 수사에 집중하고 있으나 정작 박 대통령 조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도 장담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안현덕·진동영기자 alway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