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원내수석부대표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단이 9일 오전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2월 임시국회 처리 법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날 상법 개정안 중 전자투표에와 다중대표소송제에 대해 의견 접근을 이뤄졌다. /연합뉴스
2월 임시국회의 쟁점 법안 중 하나인 상법개정안이 통과 쪽으로 윤곽이 잡혀 나가고 있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발의한 상법개정안에 대한 논의는 당초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다가 새누리당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정책쇄신을 내걸면서 180도 달라진 분위기에서 검토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9일 여야 4당 원내 수석부대표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단 회동에서 가장 이견이 적은 전자투표제와 다중대표소송제 두 가지를 2월 국회 중 처리하기로 사실상 합의했다. 하지만 아직 법적으로 악용될 수 있는 ‘구멍’이 많아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루머에 휘둘리는 ‘전자투표제’, 독립성 침해하는 ‘다중대표소송제’=여야 간 합의가 가장 쉬웠던 방안은 ‘전자투표제 단계적 의무화’다. 전자투표제는 이미 지난 2009년 주주가 주주총회에 출석하지 않고 전자적 방법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도입된 바 있다. 하지만 시행 여부를 각 회사 이사회의 결의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이용률이 저조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개정안은 상장회사에서 전자투표제를 의무화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소액주주의 참여율을 높이고 소수 의견도 반영될 수 있는 효과가 기대된다.
다만 주총에 참석하지 않고 의사결정을 내리면 현장 내 논의 진행 상황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루머에 휘둘릴 경우 투표결과가 왜곡될 수 있다.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되면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에 자회사 이사의 책임을 추궁할 소송을 제기하도록 청구할 수 있다. 만약 자회사에서 청구를 받은 뒤 30일 내에 소를 제기하지 않거나 이 기간 동안 손해가 생길 우려가 있으면 모회사 주주가 직접 소를 제기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는 종속회사 이사의 부정행위를 억제하거나 자회사를 견제하는 수단으로 효과적이다.
하지만 현행 상법의 판례에 따르면 모회사와 자회사는 별개의 법인격을 가진 회사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의 경영 활동에 개입한다면 독립적인 법인격을 침해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모회사와 자회사 주주 간 평등권이 침해된다는 우려도 있다. 모회사 주주는 자회사 주주에 비해 적은 지분으로도 소송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현재 새누리당은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100% 모자회사 관계에 한해 다중대표소송을 허용하자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야권 관계자는 “지분 비율을 100%로 하면 실질적으로 다중대표소송을 할 수 있는 기업 수가 너무 적어진다”고 반박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각각 50%, 30%를 주장하고 있다.
이밖에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임은 새누리당과 재계가 강력하게 반발해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당초 새누리당에서 긍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 방안도 이번 회동에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김선동 새누리당 원내 수석부대표는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처음에 (도입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는 입장에서 지금은 조금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용법’ 1년 뒤 시행 가능성도=박용진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상법개정안의 핵심은 회사 인적분할시 자사주에 대해 신주 배정을 금지하는 것이다. 일명 ‘이재용법’으로 불리며 사실상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 과정을 정조준한 법안이다. 현재 민주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은 법안 통과에 찬성하고 있다.
야당 법사위 관계자는 “승계 작업을 할 때 인적분할로 돈을 들이지 않고 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을 막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반면 오히려 기업들의 지주회사 전환을 막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서는 지주회사가 자회사 지분의 20% 이상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동안 자기 주식에 대한 신주 배정을 통해 이 요건을 충족해왔기 때문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별도로 자회사 주식을 매입해야 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전환을 주저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일단 시행을 1년 유예하는 방안도 이날 다뤄졌다. 여야는 추가 논의를 통해 통과 여부를 정할 방침이다. /권경원기자 nahe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