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원전]2년 후 방폐물 포화인데..."폭탄될라" 정치권선 외면 처리시설 부지 선정 표류

<2>천덕꾸러기 방폐장
33년만에 마련된 법안 발묶여
고준위 방폐장 건설 늦어지면
원전가동 지장·전력수급 차질

고리원전 1호기가 상업운전을 개시한 것은 1978년. 만성적인 전력부족 국가였던 대한민국이 전력난으로부터 벗어나는 계기가 된다. 이후 원전은 25기가 건설돼 상업운전을 하면서 현재 하루에 23GW의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문제는 25기의 원전을 발전하면서 생기는 폐기물이다. 안전성 문제로 탈핵·탈원전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방사성폐기물 처리시설 부지를 선정하는 것마저 철저하게 외면받고 있다. 더욱이 1978년부터 나온 폐연료봉은 약 42만5,000다발(2015년 말 기준)에 이른다. 수십만다발이 원전 안에 있는 임시저장시설은 2019년 월성원전을 시작으로 포화되기 시작한다. 방폐장을 추가로 설치하지 못할 경우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9일 “민관이 ‘더 미룰 수 없다’며 33년 만에 마련한 ‘고준위(고농도) 방사성폐기물 처리시설 부지선정 절차’마저도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면서 “2019년부터 원전 내 저장시설이 포화되면 원전 가동에 지장이 생기고 국가 전체적인 전력 수급이 뒤틀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폐연료봉을 저장할 공간을 마련하지 않으면 국가 전력 공급의 약 30%를 차지하는 원전이 계획대로 가동되기 힘들다. 차기 정부마저 고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 절차를 미룬다면 대체 전력을 찾거나 국가 전력계획을 완전히 뜯어 고쳐야 한다. 전력수급이 완전 꼬일 수 있다는 얘기다.


원전 가동 후 폐기되는 폐연료봉 등 고준위 방폐물은 중저준위(폐필터·폐수지 등)에 비해 방사능 농도가 수십억배 높다. 우리나라는 중저준위 관리시설인 경주 방폐장이 완공되는 데만 30년이 걸렸다. 고준위 방폐장은 1983년 이후 9차례나 보류되며 34년째 부지 선정도 하지 못했다. 공론화위원회는 고준위 폐기물 처리를 더는 늦출 수 없다며 올해부터 처리시설의 부지선정 절차에 들어가 2028년에 결론을 내야 한다고 권고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8년부터 고준위 폐기물 처리시설 부지를 확보하기 위한 절차를 시작하기 위해 마련된 법안은 3개월째 국회에 방치돼 있다. 부지 선정과 관련된 법안을 심의하는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이달에도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심사가 끝나면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도 가야 한다. 하지만 최근 탄핵 이후 대권으로 눈을 돌린 국회 각 정당의 행보를 볼 때 이 법안은 장기 표류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는 지난해 10월 이후 대통령 탄핵 사태가 터지며 유력 대선주자들이 떠올랐고 이들 대부분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신규 원전은 물론 건설 중인 원전 사업도 취소하겠다는 ‘탈(脫)원전’을 주장하는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대권주자들 역시 탈원전을 말하면서 지역 반발로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고준위 방폐물 저장시설 부지에 대해서는 함구로 일관하고 있어 무책임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현실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법안의 취지는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 12년간 부지선정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라며 “만약 차기 정권이 이마저도 외면한다면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들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세종=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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