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경북 안동시 정하동의 한 축산 농가에서 의사가 소에 구제역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겨울 들어 세 번째로 구제역 의심 신고가 들어온 경기 연천의 젖소 농가가 북한으로부터 날아온 ‘A형’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앞서 충북 보은과 전북 정읍에서 검출된 구제역 바이러스(O형)와 다른 유형으로 같은 시기에 2개 유형의 구제역이 동시에 발생한 것은 처음이다. 설상가상으로 두 가지 바이러스를 모두 잡을 수 있는 ‘O+A형’ 백신의 경우 현재 국내 물량마저 부족해 구제역이 사실상 통제불능 사태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8일 구제역 의심축이 신고된 경기 연천 젖소 농장은 혈청형 A형의 구제역 양성으로 확진됐다고 9일 밝혔다. 이는 보은 젖소 농장과 정읍 한우 농장의 O형 구제역과 전혀 다른 유형의 바이러스다. 구제역 바이러스 유형은 O·A·아시아1·C·SAT1·SAT2·SAT3형 등 총 일곱 가지로 나뉜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0년 이후 8차례 구제역이 발생했는데 이 중 7차례는 O형이었다. A형은 2010년 1월 포천·연천 소 농가에서 6건 발생한 것이 유일하다. 김경규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A형의 경우 (사상 최악의 피해를 입었던) 2010년 구제역 당시 경기 연천과 포천 지역에서 6건이 발생한 후 7년 만에 다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연천에서 발생한 A형 구제역의 경우 북한에서 바이러스가 발병한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날 경기도는 연천 A형 구제역과 관련해 “바이러스가 북한에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겨울철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비무장지대(DMZ)를 자유롭게 왕래하는 야생동물 등이 북한에서 바이러스를 옮겨왔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번에 A형 구제역이 발생한 연천군 군남면 젖소 농장은 휴전선과 불과 10㎞가량 떨어져 있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바람을 타고 최대 250㎞까지 이동하는 것으로 학계에 보고된 것도 경기도의 설명에 신빙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2010년 연천·포천 지역에 구제역이 퍼졌을 때도 북한 지역에서 유입된 것으로 분석됐다”며 “북한 지역 구제역 상황을 파악하는 한편 인근에 확산하지 않도록 차단 방역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관건은 방어막을 어떻게 치느냐에 달렸지만 여건은 우호적이지 않다. 정부가 8~12일 전국 모든 소에 대해 일제접종을 추진 중인 백신은 ‘O형’이기 때문이다. 충북 보은과 전북 정읍에서 검출된 O형 바이러스의 경우 기존 백신으로 차단할 수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A형 바이러스를 막을 방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정부가 영국 메리알사에서 수입하는 ‘O+A형’ 백신의 경우 현재 보유 물량이 190만마리분 정도로 일제접종 대상인 소 280만마리에 놓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는 메리알사 측에 ‘O+A형’ 백신 물량 확보를 긴급 요청해놓은 상태지만 해당 물량이 국내로 들어오려면 최대 일주일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정부는 이날 가축방역심의회를 열어 현행 4단계로 돼 있는 위기경보를 최고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하기로 했다. 구제역 발생으로 위기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된 것은 역대 최악의 피해를 낸 2010년 이후 7년 만이다. 위기경보단계에 따라 전국 우제류 가축시장은 이날부터 오는 18일까지 일시 폐쇄되며 농장 간 살아있는 생물의 이동도 금지된다. 경기도의 우제류 가축 역시 이날부터 15일 자정까지 다른 시도로 반출이 금지된다.
한편 이날 국민안전처는 구제역이 발생한 경기·충북·전북 등 11개 시도에 60억원의 특별교부세를 추가로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104억원에 이어 지원액을 추가한 것이다. 특교세는 경기·충북·전북에 각각 9억원, 충남 7억원, 강원·전남·경북·경남에 각각 5억원, 부산·인천·세종에 2억원씩 지원된다.
/세종=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