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대우조선해양 정상화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는 것은 혈세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말하는 것입니다.”
9일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집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단독으로 만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어느 때보다 고민의 흔적이 깊어 보였다. 전날 시중은행의 대우조선 여신한도(익스포저) 복원 발언 때문에 신규 자금을 투입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은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취임 이후 구조조정 원칙인 혈세 지원은 없다는 것은 유효하다”면서도 대우조선 정상화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해야 한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대우조선을 둘러싼 이 회장의 고민은 현실과 원칙 사이의 딜레마다. 혈세 지원은 없다는 원칙을 고수해야 하지만 이 원칙은 한진해운의 경우처럼 뼈아픈 고통이 따른다. 현실은 앙골라 국영석유회사 소난골의 드립실 인도 지연 등으로 대우조선의 유동성 위기가 심화되고 운영자금은 매월 1,000억원 이상 부족하다. 또 4,400억원이 걸린 사채권자 집회 역시 4월에 돌아온다. 그는 “올해 수주잔량 114척을 선주에게 인도하면 23조4,000억원에 선수급환급보증 7조6,000억원이 해결돼 거의 30조원이 넘는 경제효과를 볼 수 있다”면서 “혈세 지원은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국회·시장·언론 등의 공감대를 가지고 싶고 그래서 화두를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이 시장 참여를 들고 나온 것도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대우조선을 살릴 묘수는 시장의 참여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시중은행의 대우조선 사태 이전으로 한도 복구를 언급한 것 역시 이 같은 맥락이다. 시중은행이 대우조선 익스포저에 대한 한도를 복구하면 대우조선으로서는 민간자금으로 ‘마이너스 통장’이 생기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시중은행의 대우조선 익스포저는 대우조선 사태 이전인 2015년 5월 3조9,000억원에서 2016년 9월 2조6,000억원으로 1조3,000억원가량 감소했다. 이 회장이 던진 채무 재조정 카드 역시 시장 참여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현대상선의 경우 1조2,000억원의 현대증권 매각 이벤트가 있었지만 대우건설은 유동성이 해결될 구석이 없다”며 “일부 자산 매각, 헤비테일 방식을 협상해 일부 선수금을 당겨 받는 것 등 자구노력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법정관리로 가 100을 받을 수 있는데 50도 채 받지 못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회사가 돌아가고 숨을 쉴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대우조선의 수주잔량 인도를 위해서는 외부 자금의 필요성도 인정했다. 그는 “지난해 3조5,000억원을 들여 국익으로 9조원이 들어왔는데 업황 최저점에 있는 올해만 지나면 23조원이 환입되니 이게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은 맞다”면서도 “다만 현재 대우조선 상황에서는 114척을 인도하기 위해 외부에서 돈이 필요한 단계이고 이에 산은에 절대 기댈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 역시 변함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대우조선의 소프트랜딩을 강조하며 추가 혈세 투입은 불가능하다면서도 대우조선을 살리기 위한 답은 시장에 있다며 지원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그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로 물류 대란이 났을 때 추가 지원은 없다는 원칙을 깨고 채권단이 500억원을 지원했고 원칙을 깼다는 비난을 받았다”면서 “이는 한진해운으로 들어올 계좌를 산은이 갖는 방식으로 실제로 투입한 돈은 없었지만 물류 대란에 숨통을 틔웠다”고 언급했다. /김보리 bori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