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자동차(이하 르노삼성)가 르노의 차세대 프리미엄 SUV 개발을 전담하게 됐다. 르노삼성이 지닌 차량 개발 능력과 생산성을 인정받은 결과로 해석되고 있다. 한때 르노삼성은 르노의 생산기지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스런 시선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르노삼성은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핵심 계열사로 자리잡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잘 살려야 하는 숙제를 떠안은 셈이다.
르노삼성 부산 공장 차체 조립 라인 모습.
지난해 말 르노삼성은 모기업인 프랑스 자동차 메이커 르노에게서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르노가 앞으로 출시할 프리미엄 SUV의 개발을 르노삼성에 전담시킨 것이다. 르노삼성이 이 같은 중책을 맡게 된 것은 그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르노의 결정에 따라 르노삼성의 위상은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르노삼성은 르노의 해외 판매대리점이나 생산기지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에 시달려 왔다. 하지만 르노삼성이 르노의 차세대 프리미엄 SUV 개발을 전담하게 되면서 이런 우려를 ‘한 방’에 불식시킨 것이다. 르노삼성 측은 “르노의 이번 결정에 따라 독자적인 연구개발(R&D) 수행 능력과 생산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르노삼성이 르노의 핵심 계열사로 자리하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르노삼성의 연구개발과 생산은 각각 르노삼성 중앙연구소와 부산 공장에서 담당하고 있다. 르노의 연구개발 센터는 한국을 비롯해 프랑스, 루마니아, 인도, 브라질 등 전 세계에 다섯 곳이 있다. 이 중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르노삼성 중앙연구소는 프랑스 본사 연구소를 제외하곤 차량 개발 기획에서부터 디자인, 연구개발, 부품 구매 등 신차 개발 과정 전반을 수행하고 있는 유일한 곳이다.
르노삼성이 지난해 국내 시장에 성공적으로 선보인 중형 세단 ‘SM6’ 와 중형 SUV ‘QM6’ 역시 르노삼성 중앙연구소의 손길을 거쳐 탄생했다. 르노삼성 중앙연구소는 르노 본사와 함께 두 차량의 세부 디자인과 설계, 부품 개발을 진행했다. SM6와 QM6는 유럽에서 르노 브랜드를 달고 각각 ‘탈리스만’과 ‘꼴레오스’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현재도 르노삼성 중앙연구소는 르노 본사 연구소와 활발하게 인력을 교류하며 많은 연구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고 있다. 특히 르노삼성 중앙연구소는 르노의 중국 내수 시장 공략 기지인 ‘르노동평자동차’를 위해 연구개발 분야를 지원하고 있다.
르노삼성 부산 공장은 시간당 60대의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SUV 생산 경쟁력이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르노삼성은 2008년 르노와 기술협력을 통해 중형 SUV ‘QM5’를 만들었다. 부산 공장은 QM5를 총 39만여대 생산했다. 이 중 33만대 가량은 르노의 글로벌 판매 네트워크를 통해 수출됐다. QM5를 생산하며 확보된 기술 노하우는 2014년부터 시작된 북미 수출용 SUV ‘로그’의 위탁 생산으로 이어졌다. 르노삼성 부산 공장은 뛰어난 생산 품질을 인정받아 당초 계약된 연간 8만대를 크게 상회하는 물량을 주문받아 생산 중이다. 올해는 역대 최대 규모인 13만6,000대 가량의 로그를 생산해 수출할 예정이다.
르노삼성 중앙연구소 연구원들이 차량 안전도 실험을 하고 있다.
르노삼성의 성장은 곧 부품 협력업체의 성장과도 연결된다. 실제로 르노삼성 부품 협력업체들이 르노에 수출한 액수는 2011년 1,260억 원에서 2015년 6,800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새로운 프리미엄 SUV를 르노삼성이 생산해 유럽으로 수출하면 부품 협력업체들이 입을 수혜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한편으로는 조심스런 우려도 나오고 있다. 만약 르노삼성이 개발을 주도해 출시한 르노의 프리미엄 SUV가 유럽에서 흥행에 실패할 경우, 그 책임을 르노삼성이 떠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유럽은 중대형 SUV에 대한 수요가 많지 않다는 것이 자동차 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때문에 르노 본사는 SUV 개발에 주력하지 않고 있다. 르노 입장에서는 SUV 개발을 르노삼성에 일임하는 글로벌 분업 체제를 구축해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르노삼성으로선 앞으로 개발할 프리미엄 SUV가 반드시 흥행해야 한다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우려가 있지만 확실한 것은 르노삼성이 자체 신차 개발 능력을 뽐내며 르노의 생산기지에 불과하다는 오명에서 벗어날 기회를 잡았다는 점이다. 그뿐 아니라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르노삼성은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 2012년 시도한 SM 시리즈의 라인업 변화 실패로 시련기를 겪으며 부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르노삼성은 SM6과 QM6를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시키면서 내수 11만1,101대, 수출 14만6,244대로 2015년에 비해 12% 늘어난 총 25만7,345대를 판매했다. 이는 2010년 역대 최다 연간 판매 기록인 27만1,479대에 이은 두 번째 판매 기록이다. 르노삼성은 올해 판매 목표를 내수 12만대 이상, 수출 14만대 이상 등 총 27만대로 잡았다.
르노삼성 측은 “한국 자동차 시장은 이미 세계적인 SUV 차량들의 격전지로서 글로벌 트렌드를 가늠해볼 수 있는 주요한 테스트 마켓 역할을 하고 있다”며 “르노삼성 중앙연구소는 제품 기획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내 시장과 글로벌 시장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SUV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지고 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