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反)이민 행정명령’이 결국 항소심에서도 패소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입국을 막으려 했던 무슬림 7개국 국적자의 입국이 계속 허용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항소법원의 결정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대문자로 ‘법원에서 보자(SEE YOU IN COURT)’고 전의를 다지며 대법원행을 예고한 가운데 무슬림 이민자들을 두고 깊어진 미국사회의 갈등의 골이 좀처럼 메워지지 않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제9연방항소법원은 9일(현지시간) 만장일치로 무슬림 7개국 국적자의 입국을 한시적으로 막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법 행정명령을 복원해달라는 미 연방정부의 요청을 거부하기로 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연방정부가 ‘입국금지 조치를 재개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을 것’이라는 항고 이유를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면서 이같이 결정했다. 재판부는 또 “사법부는 행정부 조치가 위헌인지를 판단할 권한을 가졌다”며 ‘사법부 때리기’에 앞장섰던 트럼프에 대해 불편한 심기도 내비쳤다. 다만 법원은 해당 행정명령이 무슬림 차별인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이번 재판은 지난 3일 시애틀 연방지방법원 제임스 로바트 판사가 워싱턴·미네소타주의 행정명령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여 “반이민 행정명령을 일시 중단하라”고 밝힌 데 대해 미 법무부가 불복해 항소한 것이다.
취임 한 달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체면을 구긴 트럼프 대통령은 당장 이 논란을 대법원으로 끌고 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트위터에 “법원에서 보자. 우리나라의 안보가 위험에 처했다!”고 적는 등 분노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는 이후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법원 판단은) 정치적 결정”이라고 불만을 제기한 후 “우리 국가안보가 위험에 처했고 이것은 매우 매우 중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법무부는 이르면 이달 내 재항고 준비를 마치고 관련 서면을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AP연합뉴스
미국을 뒤흔들고 있는 논란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연방대법원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 사망 이후 대법관 성향이 진보 4, 보수 4로 팽팽히 맞서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석이 된 대법관 자리에 보수 성향의 닐 고서치 판사를 지명했지만 그가 트럼프의 사법권 위협에 실망을 표하고 있는데다 민주당은 그의 임명에 반대하고 있다. 공석이 채워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법원이 결론을 내려야 할 경우 대법관의 의견이 4대 4 동수로 나올 수도 있다. 이 경우 하급법원의 판단이 준용된다.
백악관의 승리를 예견하는 입장에서는 이민과 국가안보 문제에서 대법관들이 종종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반면 하급법원의 결과가 뒤집히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특히 이번 항소법원 재판부 3명 중 한 명(리처드 클리프턴 판사)이 조지 W부시 정부에서 지명한 보수성향의 판사임에도 만장일치였다는 점에서 대법원마저 트럼프에게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워싱턴 정계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법적으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재항고 대신 유사한 목적을 염두에 둔 행정명령을 다시 발동하는 것 아니냐는 예측도 있다.
한편 미국 현지언론들은 반이민 행정명령이 ‘진보 대 보수’ ‘사법부 대 행정부’의 대립구도로 전개되면서 분열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폭스뉴스 등은 “대통령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모든 이들이 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점을 확인한 결정”이라고 환대하는 이들과 “트럼프 대통령을 증오하는 것은 정책이 아니”라면서 행정부 발목잡기에 나선 진보세력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공존한다고 전했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