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타깃' 이재용과 삼성의 앞날은

컨트롤타워 위기로 정상적 경영활동 '올스톱'
해외 사업 차질·브랜드 이미지 타격도 걱정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7년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지난 1월 16일 청구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전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이재용 부회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이 구속을 면했지만 특검 수사와 재판이 끝나지 않는 한 삼성의 위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국가적 스캔들에 휘말린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 삼성의 성장동력, 대외 신인도, 기업가치가 크게 훼손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대기장소인 서울구치소로 이동하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의 모습. 하루 뒤인 1월 19일 새벽 5시,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구속 직전까지 갔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 19일 극적으로 서울구치소에서 벗어났다. 이 부회장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청구한 사전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담담한 얼굴로 서울구치소 정문을 빠져나갔다. 기각 결정이 나자마자 삼성 측은 “이 부회장이 불구속 상태에서 진실을 가릴 수 있게 돼 다행”이라는 짧은 입장을 내놨다. 이후 삼성은 이 부회장과 관련한 입장을 일절 내놓지 않고 있다. 굳이 특검을 자극하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삼성이 위기를 완전히 탈출한 것은 아니다. 대기업 총수 가운데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2013년 계열사 자금 횡령 등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최태원 SK그룹 회장, 2011년 배임 및 세금 포탈 혐의로 실형을 받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1월 초순 검찰 압수수색으로 시작된 삼성에 대한 사정기관의 수사는 해를 넘겨 특검의 이재용 부회장 소환과 구속영장 청구까지 이어졌다. 이 부회장은 구속을 면했지만 수사를 계속 받고 재판에도 대비해야 한다.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전면 보강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삼성그룹의 경영은 사실상 ‘올스톱’ 중인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지난해 12월 초로 예정됐던 정기 인사와 이에 따른 조직 개편을 무기한 연기했다.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등 삼성 핵심 수뇌부에 대한 수사도 진행 중이라 비상경영도 불가능한 상황에 놓였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 삼성은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와 향후 있을 재판에 대응하기 위해 ‘올인’한 상태”라며 “예년 같으면 인사 단행에 따른 조직 개편을 끝내고 신년 사업 계획을 본격 실행할 때이지만 지금은 그룹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정상적인 경영을 펼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해외에서도 삼성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만약 이재용 부회장이 당분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상황이 발생할 경우 삼성의 기존 사업은 물론 투자, 사업계획 등에 대대적인 변화가 전망되기 때문이다. 해외 시장에서는 이미 삼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되고 있다. 이 부회장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됐을 때 주요 외신들은 ‘뇌물죄’ 등의 타이틀을 달아 이 부회장 소식을 주요 기사로 타전했다.

현재 삼성그룹의 경영은 사실상 ‘올스톱’ 중인 것으로 보인다.
향후 삼성이 미국의 해외부패방지법(FCPA) 대상 기업이 될 경우 해외 사업은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이 경우 막대한 벌금은 물론, 현지 사업과 인수합병(M&A) 등이 막힐 수 있다. FCPA 적용 기준에 따르면, 만약 법원에서 이 부회장이 뇌물죄 판결을 받더라도 삼성전자가 곧바로 FCPA 적용 대상이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외국 기업의 경우 미국 상장기업이거나 미국에서 대리인·통신·인터넷·우편 등을 통해 뇌물 제공을 했을 때 적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는 재계 관계자들의 우려가 나온다. 미국 정부가 2000년대 들어 FCPA를 반(反)독점법 역외 적용과 마찬가지로 확대 적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들어 외국 기업에 대해서는 보다 가혹하게 벌금을 물리고 있다. 독일의 지멘스가 지난 2008년 FCPA 적용으로 8억 달러를 벌금으로 냈고, 프랑스 알스톰은 지난 2014년 7억7,000만 달러의 벌금을 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이재용 부회장이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해외에서는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만약 이 부회장이 구속이라도 된다면 해외 시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며 “특히 미국에서는 기업 오너가 뇌물 스캔들에 연루되면 해당 기업이 엄청난 후폭풍을 맞는다. 삼성의 미국 현지 법인도 일하는 데 많은 지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장 삼성의 해외 사업에서 경고음이 들어오고 있다. 우선 미국 자동차 전장기업 하만 인수 건이 위기를 맞고 있다. 삼성은 지난해 11월 자동차 전장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는 계획을 밝히며, 미국 전장 기업 하만을 80억 달러에 사들인다고 발표했다. 국내 기업의 해외 M&A 규모로는 사상 최대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난 1월 3일 하만의 일부 소액 주주들이 디네시 팔리월 하만 CEO와 이사진을 대상으로 헐값에 회사를 매각했다며 집단 소송을 냈다. 또 최근 미국 정부는 중국에서 생산하는 삼성전자 세탁기에 대해 30~50%대에 달하는 반덤핑 관세를 확정했다.

재계 관계자는 “복잡하게 꼬인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이 부회장이 직접 나서야 하는데 출국금지까지 당했다”며 “글로벌 경영 활동에서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해외 주요 거래선의 경우 전문경영인보다 오너와의 소통을 더 원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 전쟁 속에서 분초를 다퉈도 모자라는 삼성 입장에선 속이 타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흥시장 공략도 문제로 꼽힌다. 특히 최근 급속하게 성장하는 인도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9월 인도로 날아가 나렌드라 모디 총리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 부회장은 인도 현지 투자와 사회공헌 계획 등을 밝혔다. 모디 총리도 “삼성에 대한 기대가 높다”고 화답했다. 이 부회장의 공백이 현실화되면 이 같은 긍정적인 분위기에 금이 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 부회장의 발이 묶이면서 특히 삼성의 대규모 투자와 M&A 등 주요 해외 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 가뜩이나 국내외 경영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 수사까지 받아야 하는 삼성은 속수무책인 채 한숨만 쉬고 있다.

윤창현 교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라 해도 무방한 삼성전자의 CEO가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할 수 없는 건 문제”라며 “이번 수사로 자칫 삼성은 물론 한국의 대외 신인도까지 하락할 수 있는데, 오랫동안 고생해서 쌓아 온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는 건 국가적인 손실”이라고 말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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