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초였다. 출근을 위해 들어선 지하철 역 안은 무채색 옷을 입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사람들의 뒷통수와 묵직한 겨울 옷을 보고 있자니 숨이 막히는 서경씨. 얼른 스마트폰으로 눈을 돌렸다. 아무 생각 없이 모바일 서핑을 하던 서경씨 눈에 생소한 단어가 하나 들어 왔다. 로보어드바이저? 이건 뭐지?
로봇? 조언? 아니, 로봇이 무슨 조언을 해... 뭔가 싶어 내용을 좀 더 들여다보니 로봇이 돈을 대신 굴려 준단다. 아니, 로봇 녀석이 뭘 안다고 내 금쪽같은 돈을 관리한다는거야?
로보어드바이저는 전통적인 금융공학에 기반한 자산배분 알고리즘에 의해 자산이 관리·운용 되는 거라고 한다. 세계 각국의 투자 상품들을 분석해서 나의 목표 수익률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짜준다고. 또 시장 상황이 바뀔 때마다 자동으로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준단다.
뭐야, 이거 혹하잖아? 사실 서경씨는 자잘한 업무를 위해 은행에 갈 때마다 자산관리(WM)센터를 바라보곤 했다. 상담을 받아보고 싶단 생각이 여러 번 들었으나 뭔가 고급진 느낌 가득한 그 곳은 대단한 자산가만 상대해줄 것 같아서 차마 들어가보진 못했다. 들리는 얘기로는 요즘엔 금융자산 3,000만원 정도만 있어도 상담이 가능하다고는 하던데... 그래도 나의 아마추어적인 자산 관리나 소비 패턴을 낱낱이 드러내야 하는 것도 뭔가 부끄럽고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로보어드바이저라면 누굴 만나는 부담과 스트레스는 전혀 없이 자산 관리 받을 수 있는 거 아냐. 좋다야.
우유부단은 너의 것! 과감한 지름은 나의 것! 실행력 하나로 여태껏 먹고 산 서경씨. 당장 투자 체험해볼 만한 로보어드바이저를 찾아보니 지난해 11월 출시된 신한은행의 모바일 자산관리 서비스 앱 ‘엠폴리오’가 있었다. 투자 성향을 확인하는 몇 가지 질문에 답하면 로보어드바이저가 펀드 포트폴리오를 추천해준단다. 좋아, 이걸로 시작해보자.
바로 앱스토어에서 엠폴리오를 다운 받았다. 공인인증 등을 거쳐 가입하니 ‘똑똑 로보 제안’이라는 항목이 바로 떴다. 신한은행의 전문가들이 펀드를 추천하는 ‘꼼꼼 전문가 제안’도 있었지만 로보어드바이저한테 눈 딱 감고 맡기기로 했으니 로보 제안을 클릭했다.
‘똑똑 로보 제안’을 누르면 로봇이 내 투자 성향 파악에 들어간다./사진제공=신한은행
로봇이 제안하는 펀드 포트폴리오는 목돈 관리형과 적립 투자형이 있었다. 돈 백만원을 한번 넣어보기로 한 서경씨는 목돈 설계로 고고. 버튼을 누르니 투자 성향을 알아보잔다. 소득 상황과 부양가족 여부, 투자 시 고려점, 투자금 회수 시기 등 질문 몇개에 답하니 나의 투자성향이 뜬다. 바로 공격투자형..! 뭐야 나 좀 멋있잖아?이후 로봇은 서경씨에게 5개의 펀드를 추천했다. 기대 수익률은 7.93%, 변동성은 플러스마이너스 7.74%. 자산배분은 국내 채권 53.73%, 해외선진 24.29%, 해외채권 21.98%이라고.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믿고 한번 해보자. 서경씨는 각각의 펀드 투자안내서를 확인한 후 바로 100만원을 펀드계좌로 이체했다. 날짜는 12월 7일.
자료 화면. 서경씨 것 아님./사진제공=신한은행
그로부터 한 달여가 채 안 된 1월 4일. 한동안 잊고 지냈던 로보어드바이저로부터 알림이 왔다. 시장 상황에 맞춰 펀드 포트폴리오를 바꾸는 리밸런싱을 한번 하자는 것. 알고보니 엠폴리오는 두 가지 리밸런싱을 제공하고 있었다. 3개월마다 하는 정기 리밸런싱과 시장 급변동시 하는 수시 리밸런싱. 내게 알림이 온 것은 수시 리밸런싱이었다.다시 한번 로보어드바이저의 제안을 받아봤다. 그동안 돈은 100만8,021원으로 불어 있었다. 펀드 매입 수수료 0.4%가량을 제하면 수익률은 1.2% 정도. 한 달만에 이정도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왜 리밸런싱을 하라는 거지? 펀드 판매 수수료 챙기려는 거 아냐? 잠깐 서경씨는 의문이 들었으나 글로벌 경제 상황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으니.. 일단은 이 녀석을 계속 믿고 해보기로 했다.
엠폴리오 로봇 녀석은 이번에도 5개 상품을 추천해줬는데, 비율은 다소 바뀌었다. 국내채권 36.79%, 해외선진 45.29%, 해외채권 17.92%. 오호 해외선진을 대폭 늘리는군. 기대수익률은 7.93%, 변동성은 플마 7.70%. 지난번과 크게 차이는 없다. 그래 한번 해보지 뭐. 로봇이 하라는 대로 진행해보니 기존 펀드를 전부 또는 일부 팔고, 남은 기존 펀드는 추가 매수하거나 새로운 펀드를 사들였다. 그렇게 100만8,021원을 들여 매입 수수료를 제하고 나니 납입원금은 100만3,411원.
나의 자산관리 로봇을 잊고 지낸 지 또 한 달 여. 발렌타인데이를 맞아 초콜릿을 까먹다가 문득 로봇이 내 돈을 잘 불리고 있나 궁금해졌다. 엠폴리오를 켜보니 현재 펀드 잔액은 2월 14일 기준 101만6,189원. 1월 4일 리밸런싱 때 납입원금 기준 수익률은 1.27%였다. 또 내가 투자한 돈 100만원을 기준으로 작년 12월 7일부터 따지면 수익률은 1.61%. 단순하게 연간 수익률로 환산하면 8.8% 정도니, 로봇 자기가 제시한 기대 수익률은 웃돌고 있었다. 어라 이 정도면 상당히 선방이네..?
현재 로보어드바이저는 기존 금융공학 알고리즘에 최근 빅데이터 분석 및 인공지능 자가학습 딥러닝 등과 결합하면서 점점 더 고도화되고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로보어드바이저는 적재적소에 자산을 배분해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높은 수익률보다는 저위험 저수익 또는 중위험 중수익 정도를 기대하기에 적합한 자산관리 도구라고 전한다.
대신 기본적으로 펀드 매니저가 아닌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자산이 관리되는 만큼 운용 수수료가 낮아지고 거래 편의성도 높다.
한편 이미 부자들은 로보어드바이저에 대해 관심이 높다고 한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2016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부자들 중 52%가 로보어드바이저를 인지하고 있으며, 29%는 사용할 의향이 있다고 답변했단다. 로보어드바이저의 장점으로는 ‘보다 객관적 관점에서의 자산 포트폴리오 점검’(38%)과 ‘다양한 자산 포트폴리오 시뮬레이션’(23%)이 꼽혔다.
로보어드바이저에 대한 부자들의 인식./사진제공=하나금융경영연구소
그래 내가 해보니까 부자들도 솔깃할 만해. 앞으로 로보어드바이저를 적절히 활용해 저렴하고 간편한 자산관리를 잘 누려봐야겠다. 서경씨는 조만간 로봇 녀석에게 다달이 몇십만원씩 맡기는 적립식 펀드 투자도 시작해보기로 했다./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