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들의 대화를 카카오톡으로 재구성.
취업 준비생 아들을 둔 김모(57)씨는 고용 절벽이 가팔라져만 간다는 뉴스에 한숨만 늘었다. 그러던 어느날 김씨는 아들의 통화를 옆에서 듣고 깜짝 놀랐다.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하는 용어들이 난무했기 때문이다.
“총알 몇 발 남았어?”
“다 떨어져 가. 재장전 해야해.”
“어휴, 나도 이제 취준해야 하는데 취알못이라 걱정이다”
“그럼 학교 커뮤니티에 가 봐. 무물 글 많아”
“거기 가면 영끌이 얼만지도 알려 줘?”
“영끌 뿐이야? 워라밸이 어떤지도 알려 줘.”
사상 최악의 취업난은 젊은 구직자들 사이에 쓰이는 신조어에서 드러난다. 대학만 졸업하면 취업은 당연히 따라오던 호시절이 끝나고 취업이 대학 생활의 지상목표가 된 현실이 묻어나는 용어들이다.
‘총알’은 취업준비생들이 지원한 회사를 세는 단위로 쓰는 말이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 마치 총을 난사하듯 이 회사, 저 회사에 입사원서를 넣는 세태를 반영한다. 서울 최상위권 대학 문과를 졸업한 김혜린(25)씨는 “인문대 졸업생들은 회사에 지원할 때 총알을 기본 40발에서 50발은 쏘는데 서류 단계에서 10발이라도 맞으면 ‘선방’한 편”이라며 “서류탈락이 계속되면 초조한 마음에 가고 싶지 않았던 회사라도 지원해 총알을 ‘재장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심각한 취업난 속 조금이라도 성공률을 높이고 싶은 구직자들은 스스로 ‘취알못(취업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자처해 현직들에게 정보를 구하기도 한다. 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취업 게시판에선 “취알못 4학년입니다. 상반기 대비 취업 준비 계획 좀 봐주세요”와 같은 글들이 올라오면 현직에 있는 선배들이 덧글로 자격증 준비, 면접 팁 등을 알려주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연세대학교 인터넷 커뮤니티 ‘세연넷’ 취업·진로 게시판의 무물(무엇이든 물어보세요)글. 1,500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반대로 현직 선배들이 먼저 글을 올려 취준생 후배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시중은행 4년차 대리입니다. ‘무물(무엇이든 물어보세요)’합니다”와 같은 글들이 대표적이다. 후배들은 덧글로 “28세 이상은 서류 보지도 않고 떨어뜨리나요” “성별 티오가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정말 여성에게 불리하나요” 와 같은 질문들을 쏟아낸다. 이런 무물글은 구체적이고 내밀한 정보들까지 기꺼이 알려주기 때문에 ‘취알못’들에게 인기가 좋다. ‘영끌 연봉’, ‘야근·술자리 문화’ 등 현직만 아는 사실들이 가감없이 공유된다. 영끌은 ‘영혼까지 끌어모은’을 줄인 말로 본봉, 수당, 상여에 현금화 가능한 복지카드까지 더했다는 것이다.‘워라밸’은 ‘워크앤라이프 밸런스’의 줄임말로 청년들이 취업난 속에서도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지난해 11월 게시된 “연봉 3,200만원에 정시 퇴근하는 회사, 연봉 4,400만원에 22시 퇴근하는 회사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이란 설문에 응답자 1,034명 중 약 68%인 709명이 ‘연봉 3,200만원에 정시 퇴근하는 회사’를 택했다. 중견 제조 업체의 MD(상품 기획)직군에 종사하고 있는 김모(25)씨는 “우리 회사는 정시퇴근이 지켜져 퇴근 후 한시간 정도 운동을 해도 여유가 있다”며 “설령 연봉을 올려준다는 조건으로 이직 제의가 와도 지금 회사의 워라밸이 좋아서 고민할 것 같다”고 밝혔다.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