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수출 유리' 끝났다는 국책硏...황금환율 논쟁 또 불붙나

KIEP '환율정책 패러다임 전환' 보고서 곧 발표
●이젠 저환율?
해외생산·중간재 수입 많아
환율이 수출에 주는 영향 미미
수입물가 떨어져 소비에도 도움
●그래도 고환율?
저환율은 수입업자만 배불려
소비자가 얻는 혜택은 적어
美·日 환율 집착도 수출 때문

최근 원·달러, 원·엔 환율이 급락(원화 강세)하는 가운데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고환율 정책이 더 이상 수출에 유리하지 않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책연구기관인 KIEP가 지금까지의 정부 기조와 반대되는 내용의 보고서를 준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환율과 저환율(달러당 1,100원 이하) 정책 중 어느 것이 옳은지를 따지는 ‘황금환율’ 논란이 다시 불붙을 전망이다.

15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KIEP는 계량분석을 바탕으로 고환율 정책이 수출에 유리하다는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주제의 연구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KIEP의 보고서는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처럼 해외에서 생산하고 현지에서 판매하는 경우가 많아 원화 환율과 수출의 상관관계가 많이 줄었다는 분석을 바탕으로 한다. 일례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해외생산 비중은 90%에 달한다. 또 우리 기업이 중간재를 수입해 국내에서 조립한 후 해외로 수출하는 경우도 많은데 환율이 올라가면 수입비용도 올라가 기업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에 공급된 제조업 중간재 가운데 수입산 비중은 29.5%로 5년 전에 비해 2.1%포인트 상승했다. 그동안 정부가 수출경쟁력 강화를 위해 사실상 고환율 정책을 유지해왔는데 정부를 대변하는 국책연구기관이 이에 반대되는 보고서를 내는 것은 이례적이다.

고환율을 포기하면 얻는 것이 많다는 주장도 나온다. 무엇보다 가계살림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환율이 달러당 2,000원일 때 해외에서 1달러짜리 물건을 들여오는 수입업자는 마진을 붙여 2,000원 이상에 판매한다. 그러나 환율이 1,000원으로 내려가면 소비자가격도 대폭 낮아진다. 정부와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이 이구동성으로 올해 최대 리스크로 꼽는 소비 부진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소득재분배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환율이야말로 가장 손쉬운 소득재분배 정책”이라며 “환율이 내려가면 기업의 매출이 줄어들 수 있지만 가계는 이득을 봐 빈부격차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환율이 내려가도 수입업자가 차익을 가져가 소비자가 얻는 혜택은 적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휘발유·라면·과자 등이 단적인 예다. 환율이 내려가는 폭에 비해 휘발유 가격 인하분은 적었던 게 사실이고 밀가루 수입 가격이 낮아진다고 해서 라면·과자 등의 소비자가가 내려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예전보다 영향력이 줄었다고 하지만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시차를 두고 분명히 존재한다”며 “최근 수출이 반등하고 있는 것도 2015~2016년 환율이 오른 영향이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환율이 오르면 알파벳 ‘J’ 모양처럼 시차를 두고 수출이 급반등한다는 ‘J커브’ 효과다. 원·달러 환율은 2014년 평균 달러당 1,053원에서 2015년 1,131원, 지난해 1,160원으로 올랐다. 원·엔 환율도 2015년 100엔당 935원이었지만 지난해 1,069원으로 껑충 뛰었다. 수출 증감률(전년 대비)은 지난해 11월부터 3개월 연속 증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전직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환율이 수출에 별 영향이 없다면 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일본, 중국 등이 자국 통화 약세에 목을 매겠느냐”며 “내수 규모가 작은 우리는 결국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하므로 고환율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저환율 정책을 쓰면 선박·철강 수주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환율이 내려가면 업체가 원화로 받을 수 있는 돈이 적어지므로 손익분기점이 그 사이에 걸리면 아예 수주를 포기하는 사례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종=이태규·김상훈기자 구경우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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