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안 좌담] "상법개정 땐 기업들 투기자본 놀이터 전락...해외엔 없는 희귀법"

<한경연 '前 상법 학회장들에게 듣는다'>
경영권 방어에 재원 소진...일자리 등 축소 불가피
규제뿐인 이상론...소액주주 피해·국제 웃음거리 우려
감사위원 분리선출 도입 땐 외국투자기관 연합 공격
다중대표소송도 회사 법인격 무시 '지주사제' 위협

15일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관 대회의장에서 열린 ‘상법개정안의 쟁점과 문제점:전(前) 상법 학회장들에게 듣는다’ 좌담회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정치권의 상법 개정 추진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경제연구원


“야권이 주장하는 상법개정안이 통과되면 우리 기업들이 해외 투기자본에 대한 경영권 방어에만 몰두하다 실탄을 소진하게 됩니다. 기업 투자재원은 줄고 일자리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정치권은 외국에서 입법례를 찾기도 힘든 희귀한 법안을 충분한 토의도 없이 처리하려 하고 있습니다. 반기업정서를 타고 몇몇 정치인이 현실과 이상을 호도할 경우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기업 하기 힘든 나라가 될 것입니다.”(최완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국회에서 논의 중인 상법개정안에 대해 상법·기업법 학회장을 역임한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다. 상법은 기업 활동을 원활하게 하고 기업을 유지·발전시키는 목적으로 만든 법인데도 정치권이 인기영합주의에 매몰돼 상법을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국회에 상정된 상법개정안은 주요 선진국의 입법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과잉규제일뿐더러 현실과 괴리된 이상론에 불과하다”며 “기업의 이사회가 기관투자가들의 놀이터가 되고 결과적으로 소수주주들이 피해를 볼 경우 전 세계가 주목하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15일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관 대회의장에서 열린 ‘상법개정안의 쟁점과 문제점:전(前) 상법 학회장들에게 듣는다’ 좌담회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상법개정안이 소액주주 권리 강화라는 본래 취지와 달리 외국계 헤지펀드만 유리해지는 자충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오너의 전횡을 견제하고 소액주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상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하지만 국내 기업의 피해가 오히려 소액주주의 피해로 전이되는 모순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감사위원 분리선출제가 도입되면 외국계 투자기관이 연합해 국내 매출액 상위 10개 기업 중 6곳(삼성전자·현대자동차·LG전자·기아자동차·SK이노베이션·현대모비스)의 감사위원을 모두 선임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는 감사위원 이사를 뽑을 때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한다는 내용으로 외국계 투기자본이 일명 ‘지분 쪼개기’로 3% 제한을 회피할 경우 대주주보다 주식을 적게 보유하더라도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사를 다수 선임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감사위원 분리선출제가 도입되면 삼성전자의 경우 내부자, 전략적 투자자, 국내 기관 등의 의결권 지분이 최대 29.7%에서 17.5%로 떨어지지만 외국 기관의 의결권 지분은 28.7%로 변함이 없다. 김선정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는 “소수주주가 감사위원을 선임하는 외형적 틀을 갖춘다고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나 회계 투명성 제고가 이뤄지진 않을 것”이라며 “감사위원이 소수주주를 대변하게 된다면 분파적 이익이나 경영 외적 목표를 겨냥해 경영분쟁을 유도하거나 단기실적에 집착하며 경영진을 압박할 가능성만 높아진다”고 꼬집었다.

집중투표제도 외국계 투자기관의 이사회 진출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2인 이상 이사를 선임할 때 1주당 1표씩 의결권을 주는 기존 방식과 달리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로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10대 기업 중 삼성전자·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등 4곳에서는 외국 기관이 연합할 경우 이들이 선호하는 이사가 무조건 한 명 이상 선임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완진 교수는 “소수주주들이 원한다면 정관에서 배제하기 쉽지 않아 현재도 사실상 집중투표제를 강제하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라며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다면 민사법상 사적 자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고 외국 투기펀드들에 의해 우리 기업이 많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중대표소송제의 경우 지주회사제도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다중대표소송제란 모회사 주주가 불법행위를 한 자회사 임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낼 수 있는 제도로 자회사에 대한 평균 지분율이 75%를 넘는 우리나라 지주회사체제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송종준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복수의 기업으로 구성된 모회사와 자회사를 모두 경제적 동일체라고 취급하는 것은 회사의 법인격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특히 모회사 주식을 1% 이상만 갖고 있어도 주주가 자회사 이사의 책임을 추궁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제도가 탄생한 미국보다도 지나치게 광범위한 규정”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전자투표제 및 근로자 대표 사외이사제 역시 현실성이 떨어지는 주장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전자투표는 본인 인증이 어렵고 확인되지 않은 루머로 의사결정이 좌우될 수 있는데다 해킹, 시스템 오류 등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또 우리사주조합에 선임권을 줘 기업의 이사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한 근로자 대표 사외이사제는 특정 집단(우리사주조합)에 속하는 주주에게만 특혜를 주는 것으로 회사법의 기본원칙인 주주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신희철기자 hcshin@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