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경찰들이 16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피살된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위쪽 사진) 김정남의 시신이 안치된 쿠알라룸푸르 병원 부검실 입구에서 한 직원이 바깥쪽을 바라보고 있다. 김정남 암살 사건 이후 현지 공항 및 병원 등에 대한 경계가 강화된 가운데 현지 경찰은 용의자 2명을 체포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쿠알라룸푸르=AP연합뉴스
김정남 피살사건 용의자들이 체포되면서 북한의 새로운 암살·공작 수법도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점조직을 가동해 정체를 은폐하고 외교적 마찰도 최소화하려는 목적으로 미스터리 첩보영화에서나 볼 법한 청부살인 수법을 활용했을 가능성을 유력하게 제기하고 있다.◇여성 2명 체포…베트남·인니 여권 소지=16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경찰은 이날 김정남 피살과 관련해 인도네시아인 여성 1명을 용의자로 추가 체포했다. 용의자 1명이 추가로 붙들려오면서 현지 경찰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체포한 용의자는 모두 2명으로 늘어났다.
앞서 말레이시아 경찰은 폐쇄회로(CC)TV에 찍힌 여성 1명을 15일 오전9시 붙잡았다. 하지만 이 여성들이 김정남 암살을 직접 주도한 게 아니라 다른 남성 용의자 4명의 사주로 범행했다면 도주한 나머지 용의자들이 잡히기 전까지는 사건의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기 힘들 수도 있다.
처음 검거된 여성은 베트남 여권을, 두 번째 여성은 인도네시아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다. 두 용의자의 이름은 각각 도안 티 흐엉(29), 시티 아이샤(25)이다. 경찰은 이들 외에 남성 용의자 4명을 추적 중이었는데 첫날 체포된 여성은 “이들 중에는 베트남과 북한계가 포함돼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여성 용의자는 또 경찰 진술에서 “말레이시아 여행을 함께 온 남성 4명으로부터 승객들을 상대로 장난을 치자는 제안을 받았다. 상대가 김정남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이들 남성은 한 여성에게 김정남의 얼굴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다른 여성에게는 김정남의 얼굴을 손수건으로 가리라고 지시했다는 게 이 용의자의 주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지 언론에 “두 여성 용의자는 물론 추적 중인 남성 4명 역시 북한으로 의심되는 ‘한 국가’에 고용돼 돈을 받고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체포된 것으로 알려진 말레이시아인 남성 1명은 수사 조력자로 알려졌다.
◇암살단 동원한 청부살인 가능성=북한이 이번 김정남 피살에 활용한 청부살인은 과거 공산주의 국가들이 테러행위를 할 때 흔히 사용한 수법으로 전해지고 있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세계 도처에 흩어진 점조직을 이용해 정체를 숨기고 용의자로 체포된 후에도 끝까지 북한과의 연관성을 부인해 외교적 마찰을 줄이려는 시도”라며 “북한은 지난 1983년 아웅산 폭파테러 때도 현지 협조자를 이용했다”고 설명했다. 말레이시아 당국도 이들을 살인청부를 받은 암살단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말레이시아 중문지 동방일보는 이날 현지 고위소식통을 인용해 체포된 2명의 여성 용의자와 도주 중인 4명의 남성이 모두 살인 청부를 받은 암살단이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현지 경찰은 이번 김정남 살해를 모의하고 계획한 막후집단 또는 지시국가를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국가를 특정하지는 않은 채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현지 소식통은 “일반적으로 암살 작전은 이를 주도적으로 기획하는 정보기관이 있어야 완성될 수 있다”며 “용의자 6명이 체포된 후에 진상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김정남은 13일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셀프체크인 기기를 이용하다 여성 2명에게 습격받은 직후 신체 이상을 호소하며 공항 카운터에 도움을 요청했고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숨을 거뒀다.
/나윤석·박홍용기자 nagij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