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공여 등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두 번째 구속영장 심사를 앞둔 16일 오전 서울 대치동 특별검사 사무실에 들어서고 있다./송은석기자
박영수 특별검사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에 성공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싼 뇌물죄 수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이재용→최순실→박근혜’로 이어지는 뇌물 의혹의 연결고리를 확보하면서 특검은 앞으로 예정된 대통령 대면조사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다. 아울러 특검의 수사 기한 연장을 두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압박할 새로운 카드도 마련한 셈이다. ‘이 부회장을 구속 수사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연장 논리를 확보한 것이다.한정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17일 새벽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1차 구속영장 청구 때와 마찬가지로 박 대통령 등의 강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비선실세 최순실씨를 지원한 터라 “삼성은 강요·강압의 피해자”라는 변론을 폈다. 지난달 19일 구속영장이 기각된 때와 큰 틀에서 범죄 사실과 사건 흐름이 달라지지 않아 판단을 달리한 이유가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하지만 법원은 이 부회장의 지원에 대가성이 있다고 판단해 특검의 손을 들어줬다. ‘이 부회장이 그룹 경영권 승계 등의 사익을 위해 회삿돈을 빼내 사상 유례없는 거액의 뇌물을 박 대통령과 최씨에게 제공한 만큼 죄질이 매우 무겁다’는 특검의 주장을 받아들인 셈이다.
특검이 이 부회장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 결정을 앞두고 황 대행에게 수사 기한 연장을 요청한 이유도 이를 염두에 둔 조치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 구속 수사에 이어 기간 연장까지 성공해 30일이라는 시간을 확보하면 특검은 다시 수사에 속도를 붙일 수 있다.
먼저 거론되는 게 박 대통령 대면조사다. 특검은 충분한 시간을 확보한 만큼 청와대와 조율하는 과정에서 한층 유리한 고지를 확보할 수 있다. 각종 이유를 내세워 대면조사를 늦추고 있는 청와대 측 ‘지연전략’에 맞설 시간을 번 셈이다. 행정법원이 16일 “대통령 비서실장과 경호실장의 압수수색 영장 집행 불승인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특검의 요구를 각하하기는 했으나 여유시간이 충분한 만큼 청와대 압수수색도 재준비 작업에 착수해 재차 시도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법원이 청와대 압수수색 영장에서 허락한 기간도 이달 28일까지로 특검은 여전히 열흘가량 시간을 갖고 있다. 게다가 그동안 미진했던 ‘세월호 7시간 의혹’을 비롯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직무유기 등 각종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가 가능하다.
앞서 남은 시간상 수사가 불가능하다고 밝힌 롯데·SK 등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출연한 대기업에 대한 수사에도 다시 손댈 수 있는 계기와 시간을 마련했다. 특검법 2조는 최씨 일가의 국정농단 의혹과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의혹, 우 전 수석 관련 의혹 등 총 14개에 ‘수사 중 인지한 사건’까지 총 15개를 수사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수사는 정유라씨 이대 입시·학사 비리,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 정도다. 그만큼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 법조계 안팎에서 이 부회장 구속 수사와 더불어 수사 기한 연장 승인이 앞으로 특검 수사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 구속 수사라는 고비를 넘긴 특검이 앞으로 수사 과정에서 겪게 될 가장 큰 변수 가운데 하나는 황 대행이 수사 기간 연장 신청을 받아들일지 여부”라며 “승인 여부에 따라 특검의 수사 성패가 좌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현덕기자 alway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