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비난·호통...혼돈만 남은 트럼프 '77분 깜짝회견'

새 노동장관 후보 발표 후
"난장판 물려받아" "가짜뉴스"
오바마 행정부·언론 싸잡아 비난
러스캔들도 "아무 관련없다" 해명
"진짜 문제는 정보기관 정보유출"
법무부에 유출자 색출 지시 밝혀
내주 새 반이민명령 발동 계획도

1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열고 질문할 기자를 지명하고 있다. /워싱턴DC=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와의 유착 의혹과 인선 실패 등으로 궁지에 몰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에서 77분 동안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한 분노와 불만을 쏟아냈다. 폭풍처럼 몰아친 회견 내내 그는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와 정보기관·언론을 싸잡아 비판하는 한편 최근 워싱턴 정가를 뒤흔들고 있는 ‘러시아 커넥션’ 의혹에 대해서는 일방적 해명만 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불법 가정부’ 채용 논란 등으로 사퇴한 앤드루 퍼즈더 노동장관 후보 후임으로 알렉산더 아코스타 전 법무차관을 지명했다고 발표하기 위해 출입기자들이 모인 백악관 이스트룸에 섰다. 그는 하버드로스쿨을 졸업한 아코스타 장관 후보를 간략히 소개한 후 전임 행정부로부터 경제·외교·안보의 ‘난장판(mess)’을 물려받았다고 꼬집었다. 이후 10여분 동안은 “우리 팀이 ‘잘 조율된 기계’처럼 돌아가면서 일자리 창출 등 많은 일을 짧은 시간에 해냈다”는 자화자찬이 이어졌다.

하지만 기자들의 질문이 시작된 순간부터 분위기는 급변했다.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회의 (NSC) 보좌관을 비롯한 측근들의 ‘러시아 커넥션’과 대통령이 이를 묵인했다는 의혹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러시아와 아무 관련이 없다. 러시아에 빚도, 대출도, 어떤 거래도 없다”며 격한 표정으로 해명했다. 그는 또 자신의 측근들이 지난 대선 기간 러시아 고위관리 등과 지속적으로 접촉했다는 뉴욕타임스(NYT)와 CNN 등의 보도에 대해 “가짜 뉴스”라며 “러시아에 대해 여러분이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지만 모두 가짜 뉴스”라고 주장했다.


알렉산더 아코스타 노동장관 지명자/AP연합뉴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플린 전 보좌관이 러시아 대사와 접촉한 것에 대해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옳은 일을 했다”고 두둔하면서 “문제는 그가 부통령에게 이를 적절히 말하지 않은 것”이라고 ‘거짓 보고’가 경질의 배경임을 내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핵 홀로코스트(대량학살)’를 거론하며 “매우 강력한 핵보유국인 러시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러시아 커넥션’과 “정보기관들이 대통령을 믿지 못해 민감한 정보를 보고하지 않는다”는 보도 역시 “가짜 뉴스”라면서도 “가장 큰 문제는 정보기관 인사들이 정보를 유출한 것”이라고 정보기관을 향해 날을 세웠다. 그는 “정보유출은 형사범죄로 아주 심각한 문제”라며 법무부에 정보유출자 색출을 위한 수사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무슬림 7개국 출신과 난민의 입국을 잠정 금지한 반이민 행정명령에 대해 법원에서 제동을 건 것과 관련해서는 “새 행정명령을 다음주 중, 늦어도 다음주 중반에 발표하겠다”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매우 포괄적인 내용이 될 것”이라고 밝혀 또 한 차례 혼란을 예고했다. 트럼프 정부는 기존 반이민 명령은 대법원에 가도 승산이 높지 않아 폐기하기로 했다.

야당과 정보기관·언론을 향한 비난과 호통, 인종차별성 발언까지 난무한 기자회견에 여론은 아연실색했다. NYT는 “백악관에서 유례없는, 비정상적이고 분노에 찬 기자회견이 열렸다”고 평가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