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실제 모습까지 끌어내는 '홍상수표' 영화

제67회 베를린영화제 김민희에 여우주연상
즉흥적으로 쓴 대본 아침에 나눠주기로 유명
평범한 남녀관계서 인간의 속물본능 뽑아내

베를린영화제에 참석한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홍상수 감독 /베를린=AFP연합뉴스


“남녀관계 안에서는 이성과 본능, 욕망 등 다양한 가치들이 동시에 충돌하고 힘의 관계도 잘 보입니다. 그런 모습을 다루는 게 흥미롭습니다.”

과거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던 홍상수 감독이다. 이번 제67회 베를린영화제에서 김민희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홍 감독의 19번째 장편이다.


홍 감독은 일상의 순간을 포착해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준 1996년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데뷔했다. 신선했다. 이후 ‘강원도의 힘’(1998)과 ‘오! 수정’(2000) 등에서 평범한 남녀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내밀한 위선과 욕망을 까발렸다. ‘홍상수표’ 라는 말이 통용되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국제적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생활의 발견’(2002)과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부터다. ‘생활의 발견’은 로테르담영화제에 초청됐고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이후 ‘극장전’(2005)은 그간 무겁고 어두웠던 전작들과 달리 유머러스하고 유쾌하게 남녀관계를 풀어보였다.

홍 감독의 영화에는 특정한 장소와 공간, 그리고 술자리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주인공들은 술자리 대화에서 속물근성을 드러낸다. 이에 홍 감독의 반복된 주제의식과 연출 기법은 ‘자기복제’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즉흥적이고 독창적인 영화 작법으로도 유명한데, 그날 촬영할 장면의 시나리오를 그날 아침에 써서 배우들에게 나눠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연 배우들의 실제 말투나 성격, 습관 등을 영화 속 캐릭터에 접목하기도 하고, 배우들의 실제 모습을 가장 잘 끌어내는 감독으로 꼽힌다. 유준상, 이선균, 윤여정, 문소리, 고현정, 정재영, 김민희 등이 홍 감독과 함께 작업했다.

홍 감독은 3대 영화제에 단골 초대 손님이기도 하다. ‘영화제가 사랑하는 감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번에 수상한 19번째 장편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비롯해 18일(현지시간)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김민희는 “홍상수 감독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라고 수상소감을 말했고 홍 감독은 객석에서 박수를 치며 축하했다.

/연승·조상인기자 yeonv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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