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만이 아니다. 대다수 대기업은 채용계획조차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10대그룹 중 채용방안이 결정된 곳은 절반도 안 된다. 무엇보다 총수 구속이라는 초유의 위기에 직면한 삼성은 채용 규모·일정을 정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삼성은 통상적으로 해마다 2월께 채용 규모와 일정을 확정한 후 3월 초 상반기 채용공고를 내고 4월 중순 직무적성검사(GSAT)를 실시해왔다. 지난해에는 상반기와 하반기에 나눠 모두 1만4,000명을 신규 채용했다.
하지만 올해는 2월 하순에 접어드는데도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 다른 기업들도 관행상 삼성의 채용내용을 보고 규모 등을 정하는데 삼성이 멈췄으니 채용시장에 먹구름이 낄 수밖에 없다. 벌써 취업준비생 사이에는 ‘2만~3만개의 대기업 일자리가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이렇게 대기업 투자와 채용이 불투명해지면 이를 참고하는 정부 정책 수립도 지장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사정은 아랑곳없이 과도한 기업 흔들기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대선주자들은 너도나도 재벌개혁을 외치고 야당은 중소·중견기업들까지 우려하는데도 투기자본의 배만 불려주는 상법개정안을 밀어붙일 태세다. 특검도 대기업 수사 확대 운운하며 기업 때리기에 가세하는 판이다. 지금은 기업들은 한해 농사를 위해 본격적으로 뛰어야 할 시점이다. 그럼에도 더 움츠러들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판에 투자와 고용에 나서라고 기업을 다그치는 촌극(寸劇)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