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서울 시청 대한문 앞 태극기집회에서 광화문 촛불집회로 넘어오면서 1·4후퇴 당시 북에서 남으로 온 아버지의 기분이 그대로 느껴졌다. 50년 넘게 살아오면서 내가 생전에 아버지의 이런 기분을 느낄 줄은 미처 몰랐다.
평양이 고향인 아버지가 1·4후퇴 때 월남한 이야기는 말 그대로 역사책에나 나오는 근현대사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 그동안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일이 내 눈앞에 벌어질 줄이야.
두 집회는 정반대의 딴 세상이었다. 태극기집회에서는 ‘탄핵무효’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이 웬 말이냐’고 외쳤다. 반면 촛불집회에서는 ‘탄핵지연 어림없다’를 부르짖으며 ‘이재용 부회장 구속 축하떡’을 돌렸다.
경찰은 양측의 충돌을 막기 위해 경찰버스와 병력을 동원해 서울시의회 의사당부터 청계천 광장까지 약 100여m를 완충지대로 만들었다.
완충지대에서는 해방 후 38선처럼 긴장감이 흘렀다. 태극기를 손에 든 사람들과 촛불을 들거나 노란색 세월호 리본을 맨 사람들은 서로를 쏘아봤다. 경찰이 양측의 충돌을 막기 위해 집중적으로 배치됐으나 곳곳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태극기집회와 가까운 쪽에 촛불판매대가 있었는데 태극기집회 참가자로 보이는 한 사람이 “왜 여기서 촛불을 판매하느냐”고 따지자 촛불판매상이 “당신이 뭔데 그러느냐”며 말싸움을 벌였다.
태극기집회의 열기나 인원은 상당했다. 집회 주최 측인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에서 주장한 250만명까지는 안 돼 보였지만 적어도 수십만명은 되는 듯했다. 한때 인원동원설도 나왔지만 18일은 대부분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인 것 같았다. 60대 이상이 다수인 가운데 곳곳에서 젊은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계엄령 선포’ ‘국회해산’ 등 과격한 주장도 보였다. 정광용 탄기국 대변인은 “그동안 평화적 방법을 고수했지만 이제는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완전히 다른 방식을 선택할 수 있음을 천명한다”고 밝혔다. 일부 참가자들은 “만약 탄핵이 받아들여진다면 나라가 뒤집어질 것”이라며 거대한 저항을 예고했다. 반면 촛불집회 측은 “탄핵이 받아들여지면 광화문에서 축하 춤판을 벌이자”고 다짐했다.
원유철 자유한국당 의원은 19일 “헌재 탄핵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고 촛불과 태극기를 실은 두 기차는 앞으로 더 많은 촛불과 태극기를 태운 채 가속도를 높이며 마주 보고 달릴 것”이라며 “정치적 대참사가 예고돼 있다”고 경고했다. /안의식 선임기자 miracl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