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경제장관 7인 "상법개정안, 한걸음씩 가야지 한번에 가면 기업 다 잃는다"

[毒素 가득한 상법개정안 이대로 좋은가]
전자투표제·다중대표소송제·집중투표제 등
"득보다 실...경영권 방어 등 기업경쟁력 하락"



“일보씩 전진하는 식으로 가야지 갑자기 십보를 전진하면 어떻게 합니까. 책임경영과 투명경영은 필요하지만 기업의 경영 안정을 훼손하는 상법 개정이면 중장기적인 과감한 투자와 경영성과를 높이기 위한 환경을 만들기가 힘들어집니다.” (A 전 경제장관)

“최순실 사태로 정경유착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니 급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경제법을 만드는 사람들은 합의점을 찾을 때까지 충분한 대화를 통해 점진적으로 개선해나가야지요. 그래야 기업들의 충격이 덜할 겁니다.” (B 전 위원장)

최근 정치권이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 19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7명의 전직 경제부처 장관들은 하나같이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은 상법 개정안이 우리 경제에 득보다 실이 많은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영권과 관련해 얽히고설킨 문제가 적지 않은데 또 다른 규제를 만들어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과거 소버린 사태(2003년)와 칼 아이컨 사태(2006년)처럼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되는 사례가 재연될 개연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당시 SK와 KT&G는 모두 투기자본의 공격을 방어해냈지만 출혈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상법 개정안은 충분한 논의로 기업들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면서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현재 상법 개정안에서 논란이 되는 것은 전자투표제 의무화와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임, 집중투표제 의무화, 근로자대표 사외이사추천제 도입 등이다.

전직 장관들은 상법 개정안의 부작용으로 크게 세 가지를 꼽았다. 우선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식평등 원칙’에 따라 한 주에 한 표의 의결권을 행사하는 게 맞는데 소수가 더 많은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C 전 장관은 “1주면 1표만 가지면 되는 거지 소수니까 표를 많이 갖는다는 것은 감성이지 논리가 아니다”라고 비판하며 과도한 대주주 견제는 경영 안정에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D 전 위원장 역시 “투기자본의 공격 가능성을 배제하고 입법 취지대로 대주주를 견제할 수 있는 소수 세력이 이사회에 진입하면 대주주를 무조건 견제해야 한다는 원칙하에 올라온 안건마다 반대해 주요 의사결정 속도가 느려지고 기업의 핵심정보가 빠져나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집중투표제와 맞물린 감사위원 분리선임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이 대다수였다. 개정안에서는 감사위원을 맡을 이사를 선임단계부터 다른 이사들과 분리 선출해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감사위원회 위원은 감사위원과 이사라는 이중지위가 있어 대주주는 이사선임권까지 제한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우려가 높은 상황이다. E 위원장은 “현행 상법상도 사외이사가 아닌 감사위원을 선임할 경우 최대주주는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포함해 합산 3%로 제한받는 반면 2대주주부터는 의결권 제한이 전혀 없어 투기자본에 의해 경영권이 위협받는 실정”이라며 “이를 더욱 강화해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면 투기자본으로부터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다”고 질타했다.

과도한 주주권 행사가 될 수 있다며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에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되면 면책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이사의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경영판단이 어려운 만큼 기업가정신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E 전 위원장은 “모회사와 자회사는 별개의 법인인데 자회사 이사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모회사 주주가 제기한다는 것은 자회사의 주주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F 전 장관도 “자회사의 경영활동에 모회사의 영향력이 강제돼 독립경영 실현을 저해할 수 있어 미국처럼 제도를 도입하지만 엄격한 요건을 갖춰야 하고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전자투표제와 관련해서는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주주들의 평균 주식보유 기간이 단기인 우리나라의 경우 주주들의 활발한 참여를 기대하기 어려워 실효성이 낮다는 비판이다. G 전 장관은 “우리처럼 인터넷이 잘 보급된 나라에서는 투기자본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악의적 루머를 배포하면 주주들이 이에 근거해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한번 투표하면 철회와 변경이 불가능해 기업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힐 수 있다”며 전자투표제 도입의 의미가 퇴색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이밖에 주주가 아닌 자가 주주 자리에 오른 근로자대표 사외이사 추천 의무화 도입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F 전 장관은 “주주도 아닌 사람이 주주 자리에 오는 것은 맞지 않다”며 “노동자는 노사교섭에 따라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할 뿐이지 주주 자리에 가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전직 장관들은 재벌개혁이나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큰 틀에서는 공감대를 이뤘다. 대기업의 지배구조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해 상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은 시대적 상황과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C 전 장관은 “상법 개정을 진행해야 한다는 필요성과 공감대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여건이 된다며 상법 개정을 통해 대기업 견제장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D 전 위원장은 “걱정되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큰 방향으로 봐서는 글로벌화된 우리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개선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하지만 7인의 전직 장관은 소의 못난 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A 전 장관은 “최순실 사태로 정경유착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높아지면서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이번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대기업들의 경영권이 훼손돼 결국 외국 헤지펀드들의 공격에 의한 국부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업들의 우려를 귀담아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현호·김영필기자 h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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