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으로 치닫는 北·말레이시아 관계

북한, 상식 벗어난 비난 강도...국제법 위반까지 주장
말레이, 北 모욕적 행위 비판…자국 주권 무시 이어질 경우 추가 대응 조치도

말레이시아 주재 강철 북한 대사가 20일(현지시간) 쿠알라룸푸르의 북한 대사관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고 있다. 강 대사는 이날 김정남 피살사건과 관련한 북한 배후설을 강하게 부인했다./연합뉴스.
김정남 암살 사건의 대처를 놓고 북한과 말레이시아의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40년 넘게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두 나라의 국교 단절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의 언행이 말레이시아 법규와 외교 관행을 무시하는 수준으로 거세진 것이 사태를 악화시킨 방아쇠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북한 정부를 대신해 이번 사건 처리에 투입된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의 행보는 상식을 벗어난 모습이다. 말레이시아 입장에서 법규나 외교관행상 수용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북한 대사관은 지난 13일 김정남이 숨진 것으로 알려지자 부검을 반대하며 시신 인도를 요구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강 대사는 17일 기자회견을 통해 “기초적인 국제법과 영사법을 무시하는 행위로 인권 침해이며 우리 시민에 대한 법적 권리의 제한”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말레이시아가 북한의 적대적 세력과 결탁했다는 근거 없는 발언까지 쏟아냈다.

이에 대해 말레이시아 외교부는 20일 강 대사를 소환해 항의와 함께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강 대사는 오히려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소환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비판한 것. 그는 숨진 북한인(김정남)이 외교 특권이 있는 여권 소지자로, 여권상 ‘김철’이라고 주장했다. 시신의 유가족 인도 원칙을 지키고 DNA 검사를 통한 신원 확인을 진행한 현지 경찰에 대해서는 ‘외교관계에 대한 빈협약’과 국제법 위반까지 거론했다.


강 대사의 이런 태도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 외교가의 일반적 시각이다. 한 외교관은 21일 “빈 협약을 비롯한 국제법적으로 강 대사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없다”며 “오히려 말레이시아 법규와 외교 관행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신 인도, DNA 검사와 관련한 문제도 다툼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김정남의 신원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가운데 북한 측이 ‘김철’이라고 주장하고 있어서다. 이 경우 유가족의 DNA 채취를 통한 신원 확인은 필수적이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지난 19일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할 때 피해자의 이름을 김정남이 아닌 김철로 명시한 것도 그런 이유다.

북한대사관이 요구하고 있는 공동 수사 역시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말레이시아 입장에서는 자국 경찰의 수사결과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부정하고 사법권과 주권을 침해당하는 일이기도 하다. 20일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까지 나서 “우리 경찰과 의사들은 매우 전문적”이라며 “그들이 객관성을 갖고 일을 한다는 데 절대적인 확신을 하고 있다”고 북한 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말레이시아는 강 대사의 언행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평양 주재 자국 대사를 본국으로 불러들이는 ‘강수’를 뒀다. 북한이 계속해서 자국 주권을 무시할 경우 추가 대응 조치도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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