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파업으로 기어코 발목 잡는 노조=현대중공업 노조는 23일 총 8시간의 전면파업을 벌였다. 노조가 전면파업을 벌인 것은 지난 1994년 이후 23년 만이다.
노조가 전면파업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임금단체협상 타결과 분사 반대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지난해 5월 상견례를 시작으로 이달 22일까지 총 74차례의 교섭을 벌였지만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회사는 조선업황 악화로 신규 수주가 급감하는 점을 고려해 고용보장을 전제로 임금 20%를 반납하는 등의 고통분담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노조는 이에 대해 ‘직원들만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며 회사의 제시안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호봉 승급분 2만3,000원을 포함해 월평균 임금 12만3,000원 인상, 성과급 230% 지급, 격려금 100%+150만원 지급 안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기본급 반납과 동결 결정이 줄을 잇는 동종 업계와 비교하면 ‘호화’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임단협을 둘러싼 이 같은 노사 갈등이 전면파업 상황으로 치달은 것은 지난해 11월 분사 발표가 결정적이었다. 현대중공업은 당시 조선·해양과 전기전자, 건설장비, 그린에너지, 로봇, 서비스 등 6개 독립법인으로 회사를 쪼개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27일 울산에서 분사 안건을 승인하는 주총을 연다.
회사의 분사 방침 발표 이후 노조의 금속노조 가입은 급물살을 탔다. 노조는 회사의 분사 방침에 대해 ‘노조를 무력화하고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재계 “현대중 노조 행위 정당성 약해”=재계는 현대중공업 노조가 주장하는 임단협 타결 조건과 분사 반대 명분이 턱없이 약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노조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분사는 ‘다 함께 살자’는 전략인데 오히려 ‘다 함께 죽자’며 노조가 반대만을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꼬집는다.
현대중공업 내에는 주력인 조선 외에 건설장비와 그린에너지 등 비(非)조선 사업이 함께 섞여 있었다. 이 때문에 조선 사업이 비조선 사업의 발목을 잡고 반대로 비조선 사업이 조선 사업에 악영향을 주는 사례가 있었다. 특정 규제가 조선업에만 해당하는 것임에도 같은 법인이라는 이유로 비조선 부문이 사업 전개에 차질을 빚는 경우도 나왔다.
이에 현대중공업은 아예 회사를 분할해 개별 사업이 ‘각자도생’하는 전략을 택했다. 지배구조 개편으로 봐도 손해 볼 게 없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노조는 회사의 이런 생존전략이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회사를 쪼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면서 “분사는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조선 사업과 비조선 사업이 한데 묶여 운영되는 데 따르는 비효율적 요소를 제거해 생존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배구조상으로도 현대중공업그룹은 분사를 통해 로봇 사업을 지주회사로 두는 지주사 체제로 전환된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는 현대중공업의 분사 추진에 대해 주주들에게 찬성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지배구조가 투명화되는 만큼 주주들에게 이득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날 파업에 전체 노조원 1만5,000여명 가운데 약 800명(사측 집계)만 참여한 것을 봐도 노조 집행부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를 방증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성 노조 둔 회사 ‘남일 아냐’ 걱정=현대중공업 노조가 주장하는 사안들의 논리성 결여 여부를 떠나 재계에서는 이번 파업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다.
자칫 현대중공업 가입으로 덩치를 키운 민주노총이 어수선한 현 정국을 틈타 강성 노조의 정치적 활동을 부추길 것을 우려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중공업 노조 파업과 직접적 관련은 없더라도 강성 성향의 노조를 둔 회사 입장에서 이번 파업이 우리 회사 노조의 투쟁 본능을 자극하지는 않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