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라흐마니노프' 백배 즐기기...파가니니 랩소디 등 듣고가면 감동 커져요

천재 음악가의 정신적 아픔·치유 이야기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지난해 초연 후 한국뮤지컬어워즈 작곡상과 음악감독상, 예그린뮤지컬어워드 극본상 등을 휩쓸며 국내 창작뮤지컬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이 작품은 러시아 낭만주의의 대미를 장식한 피아노 협주곡의 거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와 그의 우울증을 치료한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1860~1939)이 함께 보낸 넉 달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극본을 쓴 김유현 작가는 ‘니콜라이 달 박사가 라흐마니노프에게 심리치료를 했다’는 한 줄의 기록에 상상력을 더해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하지만 작품 내에 담고 있는 역사와 스토리는 대부분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미리 공부하고 보면 더욱 작품을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는 이유다.

◇하나. 라흐마니노프는 왜 우울증에 걸렸을까

마음이 여린 라흐마니노프가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 대신 정신적으로 의지한 사람은 이번 뮤지컬에서도 등장하는 그의 스승 니콜라이 쯔베레프, 그리고 존경하는 음악가 차이코프스키였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죽자 라흐마니노프는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는다.

결정적으로 그를 무너뜨린 건 러시아 음악원의 지휘자로서 발표한 교향곡 1번의 실패였다. 당시 러시아 작곡가인 큐이는 “만일 지옥에 음악학교가 있어서 교향곡을 모집하면 라흐마니노프 음악을 제출하라”는 혹평을 냈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어린시절을 함께 보낸 사촌 나탈리와 결혼하려 했지만 당시 러시아 정교에서 사촌 중 첫째와 혼인을 금지하는 바람에 결혼마저 무산된다.

뮤지컬에서 다루는 시기는 이 이후다. 신경쇠약을 극복하려고 온갖 치료를 다 해봤던 라흐마니노프는 달 박사의 치료를 통해 우울증을 극복하고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작곡해 달 박사에게 헌정한다. 이후 꼬인 실타래가 풀리듯 사랑에도 성공한다. 러시아 황제 차르가 나탈리와의 결혼을 승낙한 것이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의 마지막 장면에서 악수하는 배우 박유덕(라흐마니노프 역, 오른쪽)과 정동화(달 박사 역)
◇둘. 스포일러 없는 관전 포인트 셋

이번 작품에서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라흐마니노프가 그토록 교향곡을 작곡하고 싶어하는 이유다. 이 질문에 집중하며 극을 감상하다 보면 공연이 끝나고 나올 때쯤 스스로에게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싶어하는가(왜 이것을 그토록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통해 위로받았다고 평하는 이유다.


두 번째 관전 포인트는 무대를 풍성하게 장식하는 피아니스트 이범재다. 특히 커튼콜에서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원곡의 느낌 그대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

세 번째 포인트는 무대 디자인. 무대는 좌측 ‘치유의 공간’인 달 박사의 서재, 우측 ‘절망과 극복의 공간’인 라흐마니노프의 작업실, 그리고 무대 중앙 내면의 길 등 세 가지 공간으로 구성된다. 특히 뒤엉킨 의자와 붉은 연미복, 작은 침대가 배치된 무대 중앙의 구성을 주목할만하다. 이 공간은 극의 흐름을 이해하는 키포인트다.

뮤지컬인지 피아노 연주회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숨은 주역, 피아니스 이범재
◇셋. 미리 듣고 가야할 음악들

이번 공연에 소개된 뮤지컬 넘버 17곡은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을 차용해 만들어졌다. 라흐마니노프의 주요 곡들을 미리 감상하고 간다면 발견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도입부에 흐르는 ‘교향곡’은 라흐마니노프를 절망의 늪에 빠뜨린 교향곡 1번으로 시작해 자연스럽게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넘어가게 만들었다. 특히 국내에서 인기 있는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Rhapsody on a Theme of Paganini var.18)도 등장한다. 이 곡은 ‘기억 저편으로’라는 곡에 차용됐는데, 최면에 빠진 라흐마니노프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넷. 좀 더 대중적으로 즐기고 싶다면

라흐마니노프의 곡이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할 때는 주로 피아노 연주자들의 한계를 시험하는 곡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JTBC 드라마 ‘밀회’에서는 배우 유아인 씨(선재 역)가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랩소디를 연주하며 신예로 주목을 받게 된다. 또 국내 음악애호가들에게 인기를 끈 일본 드라마 ‘노다메칸타빌레’에서도 여 주인공 우에노 주리(노다메 역)의 천재성을 입증하는 장면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다.

좀더 진지한 음악 작품을 원한다면 호주 출신 피아니스트 데이빗 헬프갓의 실화를 그린 영화 ‘샤인’을 추천한다. 이 작품에서도 헬프갓은 영국 왕립 음악원에 입학한 후 음악회 협연을 위한 오디션에 도전했을 때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연주한다. 영화 속에서는 피아노 협주곡 2, 3번뿐만 아니라 보칼리제도 감상할 수 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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