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이전 하라“...민심 외면한 채 말바꾼 외교부

건립 추진땐 "지자체가 판단" 말해놓고
이제와서 "위치 부적절하다" 이전 요구
부산시민행동 "친일 외교부" 비판 성명

악수하는 한일외교장관./연합뉴스.
외교부가 민심을 외면한 채 부산 일본 영사관 앞 소녀상을 이전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시민단체와 해당 구청이 반발하고 있지만 외교부는 서울 일본 대사관 앞에 세운 소녀상의 위치마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달 중순 외교부는 부산 동구청과 부산시, 부산시의회에 비공개 공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공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 위치가 국제 예양이나 관행적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내용이었다. 외교부는 공문을 통해 일본 공관 앞 소녀상 설치가 부적절함을 지적하고 이를 적절한 장소로 옮기는 것을 반영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파악된다.

시민단체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소녀상을 지키는 부산시민행동’은 23일 성명을 발표하고 “외교부의 소녀상 이전 입장 때문에 부산시의회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조례안’이 발의조차 되지 못하는 등 난항을 겪고 있다”며 “민심은 외면한 채 일본의 입장만 대변하는 외교부는 ‘친일 외교부’”라고 비판했다.


공문을 전달받은 지자체도 난색을 표했다. 동구청 관계자는 같은 날 “구청 공무원이 시민단체가 설치한 소녀상을 철거하고 농성자들을 끌어낸 뒤 국민적 비난을 받아 지금도 큰 후유증을 겪고 있다”며 “구청이 소녀상을 이전하라고 하는 것은 구청 공무원을 두 번 죽이는 일이며 지금은 상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부산시 여성가족국의 한 관계자 역시 “소녀상이 세워진 일본 영사관 앞은 구청이 위탁·관리하는 시유지라서 부산시가 소녀상 이전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논란이 확산되고 있지만 외교부는 뜻을 굽히지 않는 모양새다. 23일 오후 정례브리핑을 가진 외교부는 지자체에 보낸 공문이 “수차례 표명해온 입장을 더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며 “서울 일본 대사관 근처 소녀상도 국제 예양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한편, 외교부는 지난해 12월 시민단체가 부산 일본 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건립하려고 나섰던 당시만 해도 “해당 지자체가 판단할 사항”이라고 말한 바 있다. 소녀상이 설치된 후 한일 외교갈등이 커지자 기존 입장을 바꾼 셈이다.

/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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