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최근 학생들에게서 우려스러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검색의존증’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이다. 검색의존증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조사하라는 과제를 내면 득달같이 네이버 검색부터 한다. 그리고 검색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자료가 없다고 한다. 1차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주변의 살아 있는 데이터를 수집하려는 노력을 도통 하지 않는다.
둘째, 도서관 같은 오프라인상의 지식저장고를 찾지 않는다. 대체로 1990년대 이전 자료는 검색에 잘 걸리지 않는다. 과거의 자료를 찾으려면 발품을 들여야 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손 안의 검색’ 이상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셋째, 한글 기반의 네이버 검색을 주로 사용한다. 당연히 영어 기반의 해외 정보에서 차단된다. 특히 일본이나 미국, 유럽의 정보를 검색할 때 이는 심각한 장애가 된다. 전세계 정보는 90% 이상이 영어로 되어 있다. 따라서 영어 기반 검색을 사용하지 않으면 처음부터 이 90%의 정보에서 소외되는 결과가 된다.
넷째, 자신의 생각을 쥐어짜기보다는 기존 자료나 생각을 편집하려 든다. 어설프거나 미완성인 자신의 생각보다는 나름 세련되어 보이는, 그리고 검색에 걸려 신뢰성이 있는 듯이 보이는 기존 정보를 짜깁기하려 든다. 그래서 학기마다 동일한 조사를 시키면 비슷한 결론을 발표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한글 검색에 익숙해 있는 학생들이 마치 알라딘의 요술램프 같은 검색을 쓰지 않는 것은 고통스럽기까지 할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학생들에게 더 요구한다. 불편해도 영어로 검색하기를 요구하고, 국내 엔진보다는 해외 검색 엔진으로 조사하기를 요구한다.
검색은 인간을 바보로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차량 내비게이션의 전례를 본 바 있다. 내비는 편리하다. 처음 가는 길을 안내해 주기 때문에 인간이 어느 길을 어떻게 갈 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 대신 인간은 사고하지 않게 되었다. 나 자신도 그렇다. 여러 번 간 길을 기억하지 못해 매번 내비에 목적지를 입력해 안내를 받아야 한다.
이제 검색은 인공지능과 결합해 진화하고 있다. AI(인공지능) 비서는 지금의 검색기능을 완비, 우리가 필요한 대답을 줄 것이다. 심지어 인공지능이 쓰는 논문도 그리 멀지 않다. 사회과학 분야의 경우 논문의 구조는 정형화되어 있다. 다른 유사 연구를 기반으로 해 가설을 세워 데이터를 처리하고 그 결과와 시사점을 논술하면 그럴듯한 논문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인공지능은 지금처럼, 특히 한국의 학계처럼 그렇고 그런 유사 논문을 대량생산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비극은 시작된다. 검색의존증에 빠진 인간은 광풍처럼 몰아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도태되기 딱 좋은 인간의 모델이다. 이런 인간형은 미국 대선 기간에 쟁점이 된 가짜뉴스(fake news)를 구별하지 못한다. 힐러리가 테러단체인 이슬람 국가에 무기를 팔았다거나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뉴스를 검색의존증에 빠진 인간이 거짓으로 판별해낼 수 있을까.
검색의존증은 기계와 경쟁하는 인간을 만들기 십상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등장하면 인간은 이들과 다른 더 고차원적인 인지 능력을 요구 받는다. 기계가 도출한 정보에 대한 판단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이 그것이다. 인공지능처럼 주어진 알고리즘 하의 결론이 아닌 다양한 상황과 변수를 고려한 판단능력은 미래를 위한 가치 있는 자산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유명한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는 학생들의 강의실 노트북 사용을 금지했다고 한다. 이번 학기에 나도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해 볼까.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