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규하 삼성서울병원 연구전략실 교수
적층제조(Additive Manufacturing) 기술 기반의 3차원(3D) 프린팅이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중점육성 기술로 선정되면서 미국·유럽 등 각국 정부는 연구개발(R&D)과 산업 클러스터 형성 지원 등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3D 프린팅은 제조비용 절감, 제품 출시기간 단축, 제조공정 단순화 등 제품 생산의 간소화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외과용이나 치과 임플란트 등 의료 산업에 선도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기존 의료 분야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있다. 3D 프린팅은 소형이면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의료기기 생산에 적합하고 자기공명영상(MRI)장치나 컴퓨터단층촬영(CT) 등 환자의 3D 의료영상 데이터를 활용해 환자 맞춤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아울러 3D 프린팅은 의약품, 생물학적 제제 개발에도 적용되고 있다. 또 수술의 위험을 낮추기 위한 외과의사 연습용 환자별 맞춤 교육 및 수술 시뮬레이션용 모형 제작에도 활용돼 수술 시간을 단축하며 성공률을 높이고 있다.
손상된 조직 또는 장기의 기능을 회복시키기 위해 사람의 세포를 연속적 층으로 쌓아 올려 살아 있는 조직이나 장기를 구성할 수 있는 바이오 프린팅에 대한 연구와 투자 역시 증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일부 병원에서의 인공 뼈 이식 등 제한적 활용에 그치고 있지만 미국의 경우 의족·의수에서 장기 재생, 개인 맞춤형 의약품 프린팅, 생체의료 프린팅 등의 바이오 프린팅까지 가능해지면서 중증질환 치료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현재 바이오 프린팅은 개발 초기 단계지만 앞으로 기술이 진보하면 의료 산업의 혁신적 발전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시장 조사 기관 TMR(Transparency Market Research)가 지난 2015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의료용 3D 프린터 시장이 2015년 5억4,000만달러(약 6,200억원)에서 연평균 15.4% 성장해 오는 2021년 12억9,000만달러(약 1조4,8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6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3D 프린팅 의료기기에 대한 가이드라인 초안을 발표했으며 제품 개발시 설계·제조 및 안전성·유효성 테스트 고려 사항이 포함돼 있다. 맞춤형으로 생산되는 3D 프린팅 의료기기의 경우 기계적 강도 같은 파괴적 성능 검증이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제조업체는 생산 전 공정을 검증하도록 하고 있다. 이 외에 FDA는 3D 프린팅 의료기기에 대해 일반적으로 기존 의료기기의 허가인증과 동일한 규제 요구사항을 적용하기로 했다.
한편 우리나라의 식품의약품안전처는 3D 프린터를 이용해 제조되는 맞춤형 의료기기의 허가심사 가이드라인과 치과·정형외과용 임플란트 및 조직재생용 지지체 등 제품별 특성을 반영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그러나 원활한 의료 현장 적용을 위해서는 동일한 소재를 활용한 동일 품목의 적용 부위별 건강보험 적용의 한계와 3D 프린팅, 장기이식 시술에 대한 국내외 윤리기준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아울러 3D 프린팅과 같은 첨단 융복합 제품 사업화에 기존의 의료제품과 같은 중앙집중식 규제 패러다임을 적용하면 관련 산업의 갈라파고스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개방과 협력의 패러다임으로 정책 방향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초기 시장형성 단계부터 기술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계공학·로봇공학·생명공학·의학 등 학문 간의 융합, 3D 프린팅 산업계와의 산학 협력과 기술 개발 및 상용화가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는 환경과 제도 등이 강화돼야 한다. 특히 의료 분야의 3D 프린팅은 산업계의 일방적인 R&D 추진보다 환자마다 갖고 있는 미충족 수요를 해결해주는 목적으로 개발돼야 할 것이다. 3D 프린팅은 의료의 패러다임이 환자 맞춤 의료로 변화됨에 따라 의료 산업 분야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기술로 부각되고 있으며 기술이 심화할수록 관련 업체들은 전략적 비즈니스모델 설계와 중장기 투자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3D 프린팅이 전통적인 제조 및 공급 대비 경쟁우위가 분명해질수록 산학연관은 효율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해 지속적인 혁신과 성장전략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
/류규하 삼성서울병원 연구전략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