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백화점의 명품관. 사람들이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있다./권욱 기자
경기 부진의 여파로 지난해 우리 가계들의 소비 성향이 통계작성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개인들은 옷과 화장품 소비를 줄이며 덜 입고 덜 꾸몄다. 아이러니하게도 얼어붙은 소비심리는 소위 ‘명품’으로 불리는 고가 해외브랜드 앞에서만 활활 타올랐다. 지난해 우리나라 백화점 매출에서 명품 매출 비중은 평소의 세 배가량 뛰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위기’ 느낀 가계, 지갑 꽉 닫았다= 24일 통계청이 내놓은 ‘2016년 연간 가계동향’을 보면 우리 가계들이 처한 상황을 보여준다. 가계 빚은 지난해 1,340조원을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한 상황. 그러나 전체 가계의 지난해 월평균 소득은 439만9,000원으로 0.6% 증가하는 데 그쳤다. 더욱이 물가상승을 제외한 실질소득은 되레 0.4% 감소했다. 얇아진 지갑에 지난해 가계들은 전년보다 소비를 0.5%(월 평균 255만원) 줄였다. 이는 2003년 통계를 작성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물가 상승효과를 제거한 월평균 소비지출은 1.5% 위축됐다. 소득 가운데 실제로 돈을 쓰는 비율인 평균소비성향은 69.7%(4·4분기)를 기록해 사상 처음 60%대에 진입했다.
가계들은 옷을 덜 사고, 덜 먹고, 화장을 덜 한 것으로 추정된다. 통계청의 연간 의류 지출을 보면 물가상승을 제외하면(실질) 3.9% 줄었고 식료품·비주류음료도 3.5%(실질) 지출이 감소했다. 이는 한국은행이 집계한 개인들의 부문별 신용카드 매출 증감률을 봐도 알 수 있다. 지난해 의류·직물의 신용카드 매출은 전년보다 2.3%, 귀금속은 3.1%, 화장품은 2.9% 줄었다. 다만 가방과 신발, 액세서리가 포함된 패션잡화(3.1%)는 신용카드 매출이 증가했다.
명품 매출 비중은 지난 2013년 11.9%에서 2014년 12.2%, 2015년 12.5%에 이어 지난해(14.7%)까지 4년 연속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매출 증가율이 특히 가파르다. 전체 백화점 매출은 전년보다 3.3% 늘었는데 명품 매출은 세 배 수준인 9.3% 증가했다. 명품 매출 증가율은 2013년(4.4%) 이후 2014년(4.3%)과 2015년(3.1%) 연속으로 감소하는가 싶더니 지난해 다시 큰 폭으로 뛰었다. 국내 백화점에서 명품 매출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 확산으로 사람들이 외출을 꺼렸던 2015년 6월(-11.2%) 이후 18개월 연속 늘어나고 있다. 가계 지갑이 얼었다고 하지만 명품 앞에서는 눈처럼 녹아내린 셈이다.
중국인들은 카드 사용액의 71%(5조9,132억원)을 서울에서, 8.7%(7.282억원)을 제주에서 사용했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지난해 쇼핑을 위해 가장 많이 카드를 긁은 곳은 백화점(1조2,000억원)이 아닌 면세점(2조1,000억원) 이다.
중국인들이 서울에서 가장 많이 찾는 백화점은 명동에 위치한 롯데백화점 본점인데 이곳은 매출의 90%를 중국인 관광객이 올리고 있다. 하지만 전국 매출로 보면 본점 매출은 10% 수준에 불과하다.
신세계백화점이 집계한 통계를 봐도 명품의 매출 증가세는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이 주도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난해 신세계백화점의 ‘명품 장르’ 가운데 외국인 매출 비중은 2.7%에 불과하다. 지난 2014년(2.9%)보다 낮고 2015년(2.1%)에 비해서는 개선됐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외국인이 명품 매출 증가세를 주도하고 있다고 보진 않는다”면서 “특히 유명한 명품 브랜드들은 사람들이 꾸준히 사기 때문에 가격을 올려버리면 매출도 함께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구경우·박윤선 기자 bluesquare@sedaily.com
서울 한 백화점의 명품관./권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