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25일(현지시간) 다음달 1~2일 뉴욕에서 열릴 예정이던 북·미 간 트랙 1·5(반관반민) 회담이 국무부의 불허로 무산됐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정부에서 첫 북·미 간 대화로 추진된 이번 행사에는 미국 측에서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 특사 등 전직 관료들이 참석하고 북측에서는 최선희 외무성 미주국장 등이 나설 예정이었지만 미 국무부는 최 국장 등에 대한 미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WP는 미 정부 소식통들을 인용, “북측이 13일 김정남을 암살한 혐의가 짙어진 가운데 사망 원인이 화학무기금지 국제협약을 위반하는 치명적 신경작용제 VX라는 말레이 당국의 발표가 대화 취소를 결정하는 마지막 한 방이 됐다”고 설명했다. 북·미 간 트랙 1·5 회담에 참석 예정이었던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VX를 공공장소에서 사용한 것은 본질적으로 테러행위”라며 “이 때문에 (북한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도통신은 “미국이 김정남 피살과 관련,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이번 암살 사건에 대해 국무부가 정보 수집 및 분석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국방부도 김정남 암살에 사용된 VX를 ‘실질적 위협’으로 규정하며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제프 데이비스 국방부 대변인은 24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VX와 같은 맹독성 신경작용제는 미사일 탄두와 다른 무기에 장착돼 대량살상무기(WMD)로 만들어진다”면서 북한이 화학무기금지협약(CWC) 같은 협정에 가입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도발이 고조되면서 비상사태에 대비한 미군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조지프 오코인 7함대 사령관은 최근 ‘해군포럼’에 참석해 “지금 당장 전투가 벌어진다면 발생지는 한반도일 가능성이 크다”며 7함대가 북한의 기습 침략 대응에 집중할 수 있도록 3함대가 서태평양에 전진 배치됐다고 밝혔다.
한편 김정남 피살 이후 북한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27~2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제34차 유엔인권이사회 및 제네바 군축회의에 참석해 북한의 인권·화학무기 문제 쟁점화에 나설 예정이다. 윤 장관은 이 자리에서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우리 정부의 우려를 표명하고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 공조를 강조할 예정이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