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 의결했다. 이제 헌재 탄핵심판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이를 기각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런 걱정이 나온다는 것은 우리 사법체계 전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얼마나 팽배했는지를 말해준다. 우리 사법기관에 대한 신뢰성 역시 마지막 시험대에 올라 있다.
국민의 압도적인 다수가 박 대통령을 탄핵하고자 하는 이면은 단순한 실정법 위반의 문제를 넘어서고 있다. 현재 이 나라가 직면한 깊은 절망감과 절박함을 반영하고 있다. 이대로 현 집권 집단에 더 맡겼다가는 돌이킬 수 없이 이 나라가 결단 나겠다라는 위기의식이 담겨 있다. 그간 우리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희생과 고통을 바탕으로 달성한 민주주의가 일부 간악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개인들에게 농락당했다. 세월호에서 수많은 어린 생명들이 죽어 갔는데도 어느 지도자 하나 제대로 책임을 통감하는 사람이 없다. 각계에 존경할 만한 원로들도 거의 찾을 수 없다. 대선 국면에서 원칙과 철학보다는 자신의 이익과 권력을 좇아 후안무치한 얼굴로 밀물과 썰물처럼 오가고 있다. 국가의 명운과 위신에 깊은 타격을 안겨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와 위안부 관련 결정은 주무 부처조차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대체 누가, 어떠한 이유로 숙의 없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인가. 절망적이다.
촛불은 이 땅에 새로운 희망의 씨앗이 죽지 않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2016년의 대한민국 국민은 전 세계인들이 의아해 마지않는 그 엄청난 에너지를 보여줬다. 이는 지난 1980년대의 민주화 운동과 더불어 아마 두고두고 세계 정치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될 것이다.
우리가 현재 처한 상황은 정말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첩첩산중이다. 북한은 핵 개발을 지속하면서 우리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이들은 사드로 막을 수 없다. 어렵더라도 전시작전권을 빨리 회수해 북한이 감히 한국에 군사적 도발을 할 수 없는 전략과 전력을 갖춰야 한다. 핵확장 억지는 한미동맹을 통해, 재래전 역량은 한국이 주도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방어용 무기보다는 ‘공포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을 우선 갖춰야 한다. 그리고 북한을 설득해 전쟁과 대결보다는 공존과 공영의 전제하에 핵을 포기하고 더불어 살길을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기존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은 이를 극적으로 말해준다. 미국 내부에서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크게 당황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최근 보아오포럼에서 자유주의 질서의 수호자를 자처한 것은 희극적이기조차 하다. 더 이상 기존 질서는 회복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제 동아시아·서태평양 지역에서는 두 개의 타이탄(titan)들이 파편을 휘날리면서 거칠게 충돌하고 있다. 그 파편만으로도 우리는 즉사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 같은 중견국가는 극단적이거나 이분법적인 사고를 넘어서서 ‘면밀관찰’ ‘전략점검’ ‘좌고우면’ ‘신중행동’해야 한다.
경제는 하강국면이다. 새로운 동력은 잘 보이지 않는다. 빈부 격차는 커지고 중산층은 붕괴하고 있다. 인구 노령화는 급속히 진행되고 있고 사회 복지정책을 추진할 재원은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 젊은이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은 잘 보이지 않는다. 잔치는 끝났다. 이제 우리는 같이 고통을 분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적어도 사회 약자와 노년들을 보호할 사회 복지와 안전망을 점검하고, 기존의 신자유주의 모델과 재벌구조에서 탈피하는 새로운 발전모델을 적극 준비해야 한다. 촛불에서 보여준 엄청난 국민들의 에너지를 모아 사회 부조리를 줄이고 불필요한 자원의 낭비를 막을 수 있는 정책 결정체계와 정치체제를 구축해나가야 한다. 냉전적인 20세기의 낡은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을 넘어서야 한다.
그 성패는 이번 대선에 달렸다. 어느 후보가 대체 이 막중한 임무를 실행해줄 수 있을까. 그 지도자는 선동가가 아니라 안보는 안정적으로 운용하면서도, 경제는 진보적으로, 정치는 통합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명민한 후보여야만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실수를 되풀이할 여유가 없다. 이번 대선이 중요한 이유이다.
김흥규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겸 중국정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