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사처럼 많은 벤처기업들은 벤처캐피털이나 대기업을 상대로 한 투자 유치에 별 관심이 없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의 정책자금을 놓아두고 굳이 사업타당성·성장성 등 이것저것 꼼꼼히 따지는 자금을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26일 서울경제신문이 지난 2003년 이후 지난해까지 13년간 지원된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정책자금을 분석한 결과 창업 및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쓰인 자금은 대략 28조원 규모였다. 창업기업지원·신성장기반·개발기술사업화·재도약지원자금, 모태펀드 출자 등 다양한 이름이 붙은 지원금들이다. 1997년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정을 계기로 ‘1차 벤처 붐’이 일었던 김대중 정부 시절을 포함하면 지원 규모는 30조원을 훌쩍 넘어선다. 여기에 기술보증기금을 통한 보증지원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최소 230조원으로 늘어난다.
특히 창조경제를 내건 박근혜 정부는 지난 4년간 94조원(보증 포함)을 벤처에 쏟아부었다. 올해 지원 예정분까지 포함하면 110조원까지 불어난다. 노무현 정부 시기의 약 49조원보다는 2배, 이명박 정부의 93조원보다는 20조원 이상 증가한 것이다. 중소·벤처 업계 사이에 ‘이번 정부에서 벤처와 창업지원금을 못 받으면 바보’라는 얘기가 나돌았던 이유다.
과도한 지원은 결국 독이 되고 있다. 벤처·창업기업들은 정부 지원을 아주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다. 벤처라면 당연히 해야 할 벤처캐피털 또는 대기업 투자 유치에 노력하는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김형수 벤처캐피탈협회 전무는 “우선은 정부 지원, 그리고 기술보증을 낀 은행 대출, 마지막으로 외부 투자 유치라는 풍토가 벤처기업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벤처의 정부 의존도를 낮추고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현재 개별기업 지원에 맞춰진 정책의 초점을 제대로 된 생태계 조성 쪽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문성욱 서강대 교수는 “벤처가 중요한 것은 혁신이라는 고도의 불확실한 활동을 경제적 가치가 있는 활동으로 전환하는 주체들이기 때문”이라며 “벤처 정책도 생태계 이해관계자들 간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탐사기획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