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30조 官治 단물만 빨아먹는 벤처 생태로 미래있겠나

벤처기업 육성 특별조치법이 제정된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지난 20년간 벤처를 키우는 데 정부가 쏟아부은 돈이 23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서울경제신문 보도에 따르면 현 정부 4년간 벤처 지원에 들어간 나랏돈은 기술보증기금을 통한 보증을 포함해 94조원에 이른다. 1차 벤처 붐이 일었던 김대중 정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그 규모는 200조 원을 훌쩍 넘는다.

이런 지원 덕분인지 지금 벤처 수는 3만3,000개, 매출 1,000억원을 넘어선 벤처도 474개나 된다. 수치만 보면 벤처정책이 성공작인 것 같다. 하지만 속은 그렇지 않다. 기보 보증을 받거나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기술평가 대출을 받은 벤처가 3만개 가량 된다. 전체의 90%가 정부 지원에 기대 벤처 타이틀을 땄다는 얘기다. 반면 기술력을 인정받아 벤처캐피털이나 대기업 투자 유치에 성공한 곳은 전체의 3.5%에 불과하다. 한국 벤처는 ‘관제(官製)’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기술 개발·혁신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이렇게 정부만 쳐다보니 경쟁력이 생길 리 없다. 얼마 전 대한상의가 조사해보니 국내 스타트업(신생 벤처)의 62%가 창업 후 3년을 못 버티고 문을 닫았다. 스타트업 생존율 38%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6개 회원국 가운데 꼴찌 다음이다. 국내 벤처가 이처럼 허약체질인 데는 숫자 늘리기에만 급급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내용은 같은데 포장만 달리한 ‘퍼주기’ 정책을 남발해 정부 의존도만 높여놓았다. 좋은 조건의 정책자금을 쉽게 쓸 수 있는데 이것저것 따지는 벤처캐피털이나 대기업의 투자를 받겠다고 누가 나서겠는가.

관치의 단물만 빨아먹는 생태계가 바뀌어야 우리 벤처에 미래가 있다. 무엇보다 벤처의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분별한 벤처인증제 정비와 함께 엔젤투자 등 벤처캐피털을 활성화하는 민간투자 시스템 확충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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