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전체로 보면 그가 그리는 미래는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 무릇 경제성장은 인간의 이동성을 촉진하는 퍼스널 모빌리티의 성장 위에 이뤄진다. 30년 뒤 중국의 국민소득 수준이 서유럽 수준으로 올라오면 연간 5,000만대 이상의 신차 판매가 예상되며 북미, 서유럽, 일본의 신차 교체 수요도 연간 3,500만대로 버팀목이 될 것이다. 인구 74억명에 달하는 이머징 마켓의 차량 보급 양상이 선진국 수준이 된다면 신차 판매대수는 연간 2억9,000만대에 달한다. 이를 더하면 현재 세계 자동차 시장의 4배 규모다.
하지만 이 과실을 모든 자동차 메이커가 누리는 것은 아니다. 이미 시작된 인공지능 혁명 속에 자동차는 이동수단을 넘어 네트워크로 연결된 모빌리티 세상을 구현하는 핵심 요소다.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시스템 자동차’의 출현은 내연기관을 동력으로 하는 하드웨어 중심 자동차 메이커엔 큰 위협이다. 기존 가치사슬을 완전히 재구성하지 않으면 이들은 ‘파괴적 혁신’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테슬라, 애플, 구글 등 소프트웨어 기반의 정보기술(IT) 기업들엔 지금의 패러다임 전환이 퍼스널 모빌리티 서비스 기업으로 성장할 기회가 된다.
저자가 배기가스 조작 스캔들 이전의 폭스바겐과 도요타에 유독 비관적인 이유는 상명하복의 권위적인 기업 문화에 친환경, 연비, 안전성 개선의 필요성에 무딘 정부가 결합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비관론은 현대자동차그룹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저자가 분류한 4개의 그룹 중 패자그룹(미쓰비시, 스즈키 등), 위태위태한 그룹(포드, 피아트 크라이슬러, 도요타, 현대차그룹 등)에 펼쳐진 최악의 미래는 단순 부품사로 전락하는 것이다.
독일이 미래에도 자동차 강국의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위기의식에서 쓰인 이 책은 여전히 자동차 산업이 GDP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한국에도 유효하다. 여전히 성공여부는 불확실하지만 스캔들 이후 내연기관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전략 2025’를 통해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자동차 생산을 제1목표로 두고, 공유경제에도 투자하고 있는 폭스바겐의 예는 구시대적 생산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내 자동차 기업들 역시 살펴볼 만한 변화다.
이 책은 주요 자동차 메이커와 시장을 진단하고 법적, 기술적, 도덕적 관점에서 자동차 산업에 닥칠 미래를 점검하는 ‘자동차 미래학’의 교과서 같은 책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독일 정부가 그리스 구조, 남유럽의 피폐한 금융권 지원보다 독일 내의 과제에 좀 더 집중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을 보면 그는 지금 같은 패러다임 전환기에 자동차 기업과 정부가 어떤 전략을 구사해야 할지 꽤나 명확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럼에도 ‘창조적 파괴’의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 자동차 기업 노동자, 협력사인 중소기업이 ‘패러다임 전환기의 패자’로 남지 않으려면 어떤 전략과 제도가 뒷받침돼야 할지에 대해선 답을 제시하지 않았다. 특히 운전자가 사라지면서 차량의 고장이나 사고에 대한 책임을 자동차 제조사가 지는 구조가 된다면 연계산업의 플레이인 정비소나 중소형 자동차 보험사는 사라질 게 뻔한데도 그에 대한 해법 역시 없다. 일명 ‘자동차 산업의 교황’에게 독자들이 기대한 혜안은 모두가 진리인 줄은 알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점들을 다그치는 자기계발서식 서술이 아닌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해결책이었을 것이다. 1만7,000원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