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일까. 대선 예비주자마다 ‘일자리 대통령’을 자임하고 나섰다. 온갖 일자리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공공 부문에서 일자리 81만개를 창출하겠다고도 하고 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해 일자리 200만개를 만들겠다고도 한다. 공공 부문 직무형 정규직 도입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을 대기업 대비 80%로 만들겠다는 공약도 나왔다. 상시 지속 업무에 대한 비정규직 채용 규제 얘기는 공약 단골 메뉴다. ‘다른 듯’ 같고 ‘새로운 듯’ 오래된 일자리 공약들의 홍수에서 마음은 ‘가벼운 듯’ 무겁다. 우리네 자식들 취직시켜주겠다니 이보다 반가울 수 없지만 ‘대통령만 결심하면 금방 해결될 문제였다면 왜 지금껏 그리하지 못했을까’ 하는 서푼짜리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국민들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다. 공약은 그저 공약일 뿐이다. 한걸음 훌쩍 내딛기 위해 논쟁만 실컷 벌이다 흐지부지되기를 반복해왔다. 차라리 반걸음만이라도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정책을 국민은 원한다. 거창한 것보다는 작아도 디테일한 방법론이 담긴 일자리 공약들에 먼저 눈이 가는 이유다. 지금 당장 ‘모든’ 구직 청년을 공공기관에 취업시켜달라고 요구하고 싶지 않다. ‘모든’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 근로자로 만들어달라고 떼쓰고 싶지도 않다. 단지 한 가지만 당부하고 싶다. 바로 ‘학교 내 비정규직 문제’다.
비정규직의 폐해는 노동 현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인간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여긴다. 불합리한 차별에도 기꺼이 눈을 감는다. 순간순간마다 우리 사회는 병들어간다. 그렇다. 비정규직은 단순한 ‘노동 문제’가 아니다. 국민들의 의식과 윤리를 좀먹는 병폐요 심각한 ‘사회문제’다. 법제도 개선만으로 비정규직 문제가 손쉽게 해소될 수 없는 이유다. 국민들의 의식 변화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어릴 때부터 모든 인간은 존중받아야 하고 인간의 노동은 고귀한 것임을 가르쳐야 한다. 직업과 신분으로 인간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우쳐줘야 한다. 이 역할을 담당해줘야 하는 곳이 바로 ‘학교’다.
교육 현실은 딴판이다. 학교 안에서조차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 기간제 교사가 무려 4만명이 넘는다. 전체 교사 중 11.5%에 달한다. 10명 중 1명은 기간제 교사인 셈이다. ‘선생님’과 ‘비정규직’은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다. 단어의 부조화만큼이나 교육 현장은 이미 삐뚤어져 있다. 정규 교사들은 비정규직 교사들을 버젓이 차별하고 무시한다. 학생은 본 대로 따라 하는 법이다. “진짜 선생도 아니면서”라며 학생들마저 비정규직 교사들에게 대들고 조롱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선생님을 두고 ‘진짜’와 ‘가짜’를 운운하는 학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 될 리 만무하다.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가르쳐봐야 소용이 없다. 아무리 노동의 고귀함을 이야기해봐야 헛수고다. 물어보고 싶다. 이런 현실을 방치하고도 장차 공정하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어달라고 학생들에게 요구할 수 있을까. 그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학교만큼은 달라야 한다. 인간에 대한 존경과 신뢰 그리고 평등과 공정성을 스스로 보고 느끼도록 해줘야 한다. 가난했던 과거의 대한민국은 교육을 통해 비로소 거듭날 수 있었다. 지금 이대로라면 단언컨대 우리에게 ‘미래’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