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령하는 쪽과 받는 쪽이 왜 딜을 해야 하지?”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KBS 드라마 ‘김과장’ 속 한 등장인물의 대사입니다. 혹시 누구의 대사인지 아시겠나요? (‘열삥’(열심히 삥땅 치자는 ‘김과장’ 속 대사)이라면 금방 알았을텐데…)
명석한 두뇌, 빠른 판단력, 수려한 외모까지 무엇 하나 빠질 것이 없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모든 선을 버리는 냉철한 인물로 등장하죠. 바로 준호가 분한 ‘서율’의 극 중 대사입니다.
최근 ‘서율’과 같은 소위 ‘젊꼰’(젊은 꼰대의 줄임말)들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젊꼰’이란 자신의 가치관을 남에게 강요하는 ‘꼰대질’을 젊은 나이에도 일삼는 사람들을 비꼰 단어입니다. 기존 ‘꼰대’들에게 고통을 받고 있던 직장인들은 또 하나의 강력한 적을 만난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것이 물론 남의 일이라면 정말 좋았겠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지금, 바로 지금 제가 겪고 있는 고통이라는 것이 함정이라면 함정이죠.
지난달 우리 부서로 경력 사원 한 명이 이직을 해왔습니다. 나이는 저와 비슷했지만 직장 생활은 2~3년 빨라 선배로 모셔야 했죠. (아… 이 서러움이여)
이직 후 몇 주 동안 그 선배는 일을 처리할 때마다 후배인 저와 제 후배들에게 의견을 구했습니다. 커피 한 잔을 손수 사주면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달라고 하더군요. 저와 후배들도 나이 차이가 나지 않고 통하는 것이 많겠다는 생각에 친절하게 회사 생활에 대해 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차츰 회사 생활에 적응한 그 선배는 슬슬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보다 후배들이 1분만 지각하더라도 누구보다 앞장서 혼을 냈습니다. 과장님, 부장님도 괜찮다며 자리로 들어가서 일하라고 하는데, 유독 본인만 ‘이런 건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죠’라며 30~40분이 넘게 혼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연차도 몇 년 나지 않지만, 이 선배의 권위의식은 하늘을 찌릅니다. 입만 열면 예의범절을 찾고, 부모님이나 나이 지긋한 선배들도 손수 하시는 일까지 남의 손을 거쳐 해결하려고 하죠. 엘리베이터 버튼을 후배가 있음에도 자신의 손으로 ‘친히’ 눌렀을 경우, 그 자리에 있던 후배는 사회생활의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건방진’ 사람이 되고야 맙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젊꼰’은 오지랖이 거의 ‘태평양급’이라는 것입니다.
(점심 후 티타임 시간, 한 카페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 팀)
‘젊꼰’ 선배 : ##야, 혹시 외근 나가신 김 과장님 커피는 샀니?
##사원 : 아, 아뇨. 오늘 외근 나가셔서 들어오실지 안 들어오실지 모른다셔서 커피는 안 샀는데요.
‘젊꼰’ 선배 : 뭐? 같이 살고 같이 죽는 한 팀인데, 우리가 챙기지 않으면 누가 챙기느냐? 얼른 가서 김 과장님에게 전화해서 뭐 드실지 여쭤봐.
외근 나가서 들어오실지 알 수도 없는 분의 커피는 또 왜 챙긴단 말인가.
이렇게 주위 후배들을 채근하고 다그치는 선배지만 자신의 잘못에는 그렇게 관대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무슨 실수를 하더라도 “다 알고 그런 거야. 결과적으로는 잘됐잖아. 내가 이럴 줄 알았다”며 합리화에 여념이 없습니다.
가뜩이나 스트레스받을 일이 많은 회사에서 이 ‘젊꼰’의 활약은 점점 빨라지고 있는 제 탈모 속도를 배가시키고 있습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꼰대질’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데, 저와 나이도 비슷한 사람의 ‘꼰대질’을 보고 있자니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저 사람도 분명 저와 같은 연차 때는 윗사람의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을 보며 혀를 찼을 텐데, 왜 똑같은 사람처럼 변해버렸을까요?
/이종호기자 phillie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