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사드 보복에 손 놓은 정부, 도산 위기에 몰린 기업들

박윤선기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를 놓고 한국 산업계에 대한 중국의 전방위적인 보복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유통, 뷰티, 여행 등 이른바 한류 열풍 주역들이 받고 있는 상처는 너무 크다.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는 단 이틀 사이 중국 롯데마트 매장 4분의 1을 닫았다. 한국으로 오는 중국 여객기는 계속해서 취소되고 있다. 유통업계와 면세업계, 화장품 업계 등 그간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수 많은 국내 기업들이 눈앞에 닥친 중국의 보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사드 배치가 현실화 되면서 보복의 강도는 더 세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업계가 답답해 하는 것은 중국이 아닌 우리 정부와 정치권이다. 중국은 자국 이익을 위해 예상치도 못한 현란한(?) 조치를 내리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와 정치권은 중국의 태도에 욕을 하는 것 말고는 특별히 보여주는 것도, 할 수 있어 보이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내놓은 대책이 보호무역으로 손해를 입은 우리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도록 한 것인데 현재 가장 피해가 큰 롯데는 대상조차 아니다.


그 동안 이들은 그저 근거 없는 낙관론으로 사드 배치로 인한 지금의 피해를 방조했을 뿐이다. 서울경제가 사드 배치로 인해 화장품 통관 절차 강화 등 업계 피해가 가시화 되고 있다는 보도를 한 것이 지난해 8월 초다. 그런데 같은 달 정진석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경제 보복은 중국 지도부의 한반도 정책과 배치되는 이야기”라며 “중국 지도부가 정경 분리 원칙 하에 신중하게 움직일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약 한 달 전인 지난해 7월에는 황교안 국무총리가 “한중관계가 고도화돼 쉽게 경제 보복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우려의 소지는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희망은 중국 롯데마트가 영업정지로 문을 닫고 나서야 단지 ‘희망 사항’이었음이 밝혀졌다.

중국의 보복 조치의 총알받이가 된 유통 업계는 망연자실하다. 국내에서는 수 많은 규제 속에서 영업을 하고, 그 와중에 해외시장을 개척해오던 이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한국 내에서는 영업시간, 입지 등 유통 업계의 일거수 일투족을 놓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정부와 정치권이 중국 앞에선 이빨 빠진 호랑이 모습이라니. 정말로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다면 안일한 것이고, 알면서도 모른 척 했다면 기만이다. 일각에서는 정부만 믿다 거지 됐다는 푸념도 나온다. 사드 사태로 기업들의 정부 불신이 더 깊어지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sep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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