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나바로(가운데)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 위원장 /블룸버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정책 총책이 공식석상에서 한국을 “미국에 무역적자를 안기는 대표 국가” 중 하나로 지목하고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불공정무역 기업으로 꼽았다. 중국과 일본·독일 등을 주로 겨냥해온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압력이 한국을 정조준하기 시작한 것으로 우려된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은 6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전국기업경제협회(NABE) 총회 연설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덤핑관세 부과 확정을 받은 후 관세 회피를 위해 중국에서 베트남·태국으로 생산지를 옮겨 다니며 불공정무역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며 “이는 무역 부정행위로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이는 수천명의 미국인 실업자를 발생시키고 월풀 같은 기업들에 수백만달러의 손실을 떠안겨 국제질서의 기반을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비난했다.
나바로 위원장은 대선 당시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정책을 조언해온 백악관 무역총책이자 초강경 보호무역주의자다. 그가 공개석상에서 한국 기업을 직접 거론하며 비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LG전자는 최근 미국의 압박 속에 테네시주에 오는 2019년 상반기까지 세탁기를 100만대 이상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건설하는 계획까지 밝혔지만 불공정 기업으로 지목됐다.
이날 삼성과 LG에 대한 나바로 위원장의 비난은 미국 월풀 세탁기의 반덤핑 피해를 언급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미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지난 2015년 월풀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반덤핑 조사를 의뢰한 것과 관련해 올 1월 삼성·LG 세탁기에 각각 52.5%와 32.1%의 관세 부과를 결정한 바 있다. 두 기업은 ITC 제소 후 중국 공장을 베트남과 태국 등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특히 나바로 위원장은 무역적자와 안보 문제를 연관 지으며 “적자감축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공언해 관심을 끌었다. 그는 “무역적자는 국가의 식품공급 체계와 기술 및 제조사의 소유권을 외국에 양도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무역적자를 줄이는 것은 국가안보를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나바로 위원장은 이어 “한국·중국·베트남·대만·독일 등 16개국이 미국에 무역적자를 안기는 대표국가들”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미국이 4년 만에 최대 무역적자를 기록하자 위기감 조성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나바로 위원장은 세계 1위 무역흑자 대국인 독일에 대한 경계감을 드러내며 양자협정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독일에 대한 무역적자는 우리가 다뤄야 할 무역적자 중 가장 어려운 문제”라며 “다음주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양국 경제관계를 어떻게 개선할지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에 높은 비관세 장벽이 있다”며 “미일 자동차 교역에서 일본의 이틀치 수출량이 미국의 1년치보다 많다”고 강조해 일본에 대한 경계감도 드러냈다. 중국에 대해서도 “위안화가 과소평가돼 있다”며 “환율조작국 지정 문제가 다음달 발표될 환율정책 반기보고서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 상무부가 7일 발표한 지난 1월 무역수지는 485억달러 적자를 기록해 2012년 3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불공평무역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 대중국 적자 규모가 커져 트럼프 정부의 무역 상대국 압박은 더욱 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창영·변재현기자 kc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