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대놀이...오산...야마호코... "한중일 가면극 뿌리가 같다"

"세부 차이 있지만 불교서 유래"
안상복 교수 문헌분석으로 입증
전통가면극 상관성 규명 첫 사례

정조의 칙명으로 편찬된 ‘화성성역의궤’에 삽화로 그려진 산대놀이 장면.


조선시대 서울의 애오개와 사직골 인근의 거리에서는 ‘본산대놀이’라 불리는 가면극이 성행했다. 놀이패는 주로 성균관 소속 노비인 반인(泮人)들로 구성됐다고 한다. 같은 시기 서울 송파와 경기 양주 등지에서는 유행한 가면극엔 ‘별산대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금의 한국 전통가면극 ‘산대놀이’는 이처럼 다양한 전승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에도 각각 ‘오산(鰲山)’과 ‘야마호코’라는 이름의 산대와 유사한 조형물이 전래돼 혹시 서로 연관이 있는게 아니냐는 추측이 관련 학계에서 제기돼 왔으나 그 실상은 줄곧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져 있었다.

한국 전통가면극의 산대가 불교에서 유래했으며, 중국의 오산과 일본의 야마호코 또한 뿌리가 같다는 사실이 국내 학자에 의해 학술적으로 입증됐다. 9일 학계에 따르면 ‘아리랑의 페르시아 기원설’로 학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안상복 강릉원주대 중문과 교수는 최근 ‘한중일의 연희사에 등장하는 신산(神山)-그 조형 특징과 이동(異同)의 의미’라는 논문을 통해 신라와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 이어져 온 우리나라의 산대가 불교에서 유래했음을 밝혀냈다. 중국의 오산과 일본의 야마호코 역시 큰 틀에서 볼 때 한국의 산대와 유사한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고 안 교수는 주장했다.


산대의 불교 기원에 대한 보다 정확한 규명을 위해 안 교수는 한중일 신산의 원형을 구성하는 방식을 포함해 아홉가지 기준으로 설명해 나간다. 그는 “한중일 신산 조형물은 오랜 역사적 전개 과정을 거쳤기에 많은 세부적 차이점은 불가피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면서 “그렇지만 큰 맥락에서 본다면 오히려 동일성 내지 유사성에 방점을 찍을 수 있기에 동일 계통으로 묶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안 교수는 이에 앞서 2015년 ‘한중 두 나라 산대와 잡희 비교 연구’와 2016년 ‘오산과 산대의 명칭·유형과 역사전개상의 특징’이라는 두편의 연구논문에서 한국과 중국의 신산과 전통연희가 지닌 역사적 연관성에 대한 입증의 단계를 높여왔다. 안 교수는 “향후 보완하고 논증해야 할 과제가 여전히 많이 남아있지만 이번 연구로 우리 산대가면극의 지평을 넓히고 한중일 민속 연희의 역사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명나라 사람 장거정(張居正)이 쓴 ‘제감도설(帝鑑圖說)’에 나오는 중국의 오산놀이 모습.


이번 안 교수의 연구는 우리 전통가면극에서 말하는 ‘산대’의 구체적인 뿌리를 찾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기존 한국 학계에서는 산대에 다양한 관심을 보여왔지만 정작 산대가 어디서 유래했는지는 어떤 학자도 명확한 주장을 내놓지 못했다. 한국의 산대에 해당하는 것을 중국에서 오산이라고 부르는 것에 착안한 몇몇 추측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안 교수는 치밀한 문헌 연구를 통해 중국의 오산이 불교에서 비롯됐으며, 한국의 산대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신라시대 불교 행사에서 시작됐음을 확인한 뒤 ‘산대의 불교 유래설’을 제기할 수 있었다.

한중의 산대·오산과 일본의 야마호코가 지닌 상관성을 규명한 첫 사례로도 가치를 지닌다. 중국은 자국의 오산에 대한 관심 자체가 미미하고, 일본 또한 현대의 마쓰리에서 야마호코의 순행이 대표적인 볼거리라 이에 대한 연구가 축적돼 있을 뿐 한중일 연계연구엔 진전이 없었다. 따라서 중국과 일본의 오산과 야마호코가 한국의 산대와 뿌리가 같고 상호간에 긴밀한 연계성이 있다는 주장은 안 교수의 이번 논문이 최초인 셈이요, 이로써 한국 전통가면극의 역사를 새롭게 고쳐써야 할 상황이 됐다. 이창숙 서울대 중문과 교수는 “우리의 산대와 중국 일본의 전통가면극이 불교에서 유래했음을 밝힌 것은 학문적으로 의미가 크다”면서 “이번 문헌연구의 성과는 중문학계도 물론이지만 한국 민속학계에서 더 큰 관심을 보일 만하다”고 말했다.

한편 그동안 우리나라 전통 연희문화 연구에 집중해온 안 교수는 지난 2008년 ‘아리랑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탐색’이라는 논문을 통해 아리랑이 고대 페르시아 유랑민족의 노래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을 문헌 분석을 통해 내놓은 적이 있고, 고구려 무덤인 장천 1호분 북쪽 벽에 그려진 ‘백희기악도’에 등장하는 놀이패들이 서역의 집시계 유랑집단인 괴뢰자 곧 광대일 것이라는 해석으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문성진 문화레저부장 hnsj@sedaily.com

일본의 미쯔야마제례도 병풍에 그려진 일본식 전통 가면극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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