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이 국내에 도입된 2010년 무렵까지만 해도 국내 게임시장은 이른바 ‘N4’ 기업들이 주름잡고 있었다. 넥슨(Nexon), 엔씨소프트(NCsoft), 네오위즈(Neowiz), 넷마블(Netmarble) 등 회사명이 알파벳 ‘N’으로 시작하는 대형 게임사들이 그들이다.
이러한 흐름은 스마트폰이 대중화하면서 급변하기 시작했다. PC 게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투자 비용으로 제작할 수 있는 모바일 게임의 등장은 N4 중심의 게임시장을 뒤흔들었다.
N4 업체들 중 일부는 모바일 패러다임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주도권을 내주기에 이르렀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 몇몇 게임 스타트업은 현재 게임업계의 중심에 서 있기도 하다. 하지만 모바일 트렌드에 발 빠르게 대처해 N4의 명성을 이어가는, 오히려 더욱 성장한 게임사도 있다. 바로 넷마블이다.
넷마블은 N4 중 가장 먼저 모바일 게임시장에 안착했다. 새로운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는 한편 기존 PC 게임에서 보유하고 있던 지적재산권(IP)을 활용한 모바일 콘텐츠를 선보였다. 특히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넷마블 창업자인 방준혁 의장의 컴백은 넷마블 혁신의 도화선이 됐다. 이를 통해 넷마블은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도 주목받는 게임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넷마블의 성공은 그동안 소위 ‘코 묻은 돈’으로 버텨왔다고 폄하돼온 게임산업이 글로벌 콘텐츠 산업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하는 데 적잖은 기여를 했다. 넷마블의 성장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주목해볼 만하다. 음지로 치부되던 게임시장을 양지로 이끈 넷마블의 성장 스토리를 확인해보자.
지난 1월 열린 넷마블 NTP(Netmarble Together with Press) 행사 전경
여기 매출 2,000억 원을 달성한 기업이 있다. 그리 놀랄 만한 수치는 아니다. 그럼 여기서 범위를 조금 좁혀보자. 특정한 하나의 콘텐츠로만 매출 2,000억 원을 달성했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통상적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한 편의 매출액은 약 800억 원 수준이다. 쉽게 말해 2,000억 원의 매출은 1,000만 관객 영화 두 편 이상을 흥행시켜야 벌 수 있는 돈이다. 하지만 이 역시 가전, 자동차 등 판매 단가가 높은 시장의 매출에 비교하면 그저 미미한 수준이다. 조금 더 범위를 좁혀보자. 한 개의 콘텐츠로 2,000억 원의 매출을 불과 한 달 만에 달성했다면? 그리고 그 콘텐츠가 놀랍게도 모바일 게임이라면? 숫자에 한 번 놀라고, 상품에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다. 그 주인공은 바로 넷마블의 모바일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온라인 공간에서 다수의 사용자가 동시 접속해 각각 역할을 맡아 즐기는 게임) ‘리니지2 레볼루션(이하 레볼루션)’이다.
지난 1월 중순, 넷마블은 이 같은 놀라운 수치를 발표했다. 정확히 레볼루션은 출시 한 달 만에 2,06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국내 게임업계에서 단일 콘텐츠로 거둔 최단기간 2,000억 원 매출 기록이다.
세부 기록을 살펴보자. 지난해 12월 15일 출시된 레볼루션은 출시 당일에만 79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통상적으로 애플리케이션 마켓 1위 게임의 하루 매출은 평균 10억 원 남짓으로 추산된다. 당연히 구글 플레이 스토어를 포함한 주요 애플리케이션 마켓 게임 카테고리의 1위는 레볼루션의 차지였다.
놀라운 점은 이 같은 매출 흐름이 시간이 지나면서도 좀처럼 꺾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도 일종의 컨벤션 효과가 존재한다. 이모티콘, 아이템 이벤트 등 마케팅 활동을 기반으로 출시 후 약 1주일간 사실상 매출의 정점을 찍는다. 이후 점차 매출 하향세를 기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레볼루션은 달랐다. 신정이었던 지난 1월 1일에는 하루 매출 116억 원을 달성했다. 이후에도 하루 평균 70억 원의 매출을 꾸준히 기록해왔다. 출시 2주 만에 매출 1,000억 원을 찍은 레볼루션은 급기야 한 달 만에 매출 2,060억 원이라는 신기록을 달성하기에 이른다.
특히 레볼루션은 국내 모바일 게임시장에서 안착하기 어렵다고 평가받는 MMORPG 장르에 속하기에 그 의미가 더욱 크다. 그동안 모바일 게임시장에서 소위 ‘대박’을 이뤄냈다고 평가받아온 게임은 대부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캐주얼 게임’ 분야에서 탄생했다. 선데이토즈의 애니팡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게임업계 관계자 A씨는 레볼루션의 성공 배경을 이렇게 분석한다. “MMORPG는 PC 환경에 최적화된 게임입니다. MMORPG 특유의 화려한 그래픽과 사용자 환경(UI)을 모바일 환경에서 구현하기란 결코 쉽지 않죠. 실제로 그동안 출시된 대다수 모바일 MMORPG는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넷마블이 MMORPG를 통해 이 정도의 성공을 거둔 것은 암흑기 이후 절치부심하며 준비해온 모바일 전략이 제대로 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넷마블은 경쟁사보다 한 발 앞서 모바일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하며 넷마블 특유의 ‘모바일 DNA’를 만들어냈습니다. 대다수 업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모바일 DNA가 개발 철학에 뿌리내리면서 넷마블이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게 됐다고 평가합니다.”
지난해 넷마블은 매출 1조5,029억 원, 영업이익 2,927억 원을 기록했다. 2015년에 이어 2년 연속 1조 클럽 가입에 성공한 넷마블은 레볼루션의 성과에 힘입어 올해 매출 2조 원 돌파를 노리고 있다. 그렇다면 넷마블이 게임업계 대표 주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국내 대표 게임쇼 ‘지스타 2016’에 마련된 넷마블 부스 전경.
넷마블에 닥친 5년의 암흑기‘매출 2,576억 원과 영업이익 268억 원’. 불과 6년 전인 지난 2011년 넷마블이 거둔 실적이다. 당시 넷마블은 창업 이후 최악의 암흑기를 겪고 있었다. 2007년부터 2011년 사이 넷마블의 자체 개발작 19개는 모조리 실패를 맛봤다. 19개 중 8개의 게임은 심지어 출시조차 하지 못했다.
넷마블의 암흑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1년 6월, 넷마블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이슈가 발생하게 된다. 바로 넷마블의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FPS(First-person shooter·1인칭 총쏘기) 게임 ‘서든어택’의 운영권 재계약에 실패한 것이다. 서든어택은 당시 넷마블 전체 매출의 30~40%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만큼 서든어택 서비스 종료는 단순히 게임 콘텐츠 하나를 잃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 사안이어서 게임업계의 비상한 관심사로 떠올랐다. 당시 서든어택의 운영권은 게임업계의 ‘공룡기업’ 넥슨의 품에 안겼다.
사실 넷마블이 이처럼 급격한 쇠락을 겪으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한때 넷마블은 국내 게임업계의 변화와 혁신을 상징하는 기업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3월 설립된 넷마블은 넥슨, 엔씨소프트, 한게임 등 선발주자에 맞서 명확한 전략을 선보이며 틈새시장 공략에 성공해왔다. 게임 마니아를 일컫는 ‘코어 유저’ 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해온 넥슨과 엔씨소프트, 성인 유저 위주의 게임을 운영해온 한게임에 맞서 ‘10대’와 ‘여성 유저’ 를 타깃으로 삼았다.
‘퍼블리싱’과 ‘부분 유료화’는 넷마블의 차별화된 전략으로 손꼽힌다. 퍼블리싱은 타사에서 개발된 콘텐츠를 가져와 자체 플랫폼에서 운영을 담당하는 방식의 서비스를 일컫는다. 넷마블은 지난 2001년 바른손게임즈가 개발한 온라인 게임 ‘라그하임’을 넷마블 포털에서 서비스하며 업계 최초로 ‘퍼블리싱 사업’ 모델을 도입했다. 이밖에 다크에덴, 노바 온라인 등의 게임을 퍼블리싱하며 넷마블은 ‘소리 없는 강자’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넷마블의 부분 유료화 전략은 게임업계 수익모델 자체를 바꿔놓았다. 2000년 이전까지 국내 게임사들의 수익모델은 ‘월 정액제’였다. 매달 고정된 금액을 지불하며 게임을 이용하는 정액제는 게임사 입장에서는 안정된 수익이 보장되는 모델이다. 리니지, 바람의 나라 등 초창기 온라인 게임들은 대부분 월 정액제를 채택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짧은 시간 동안 가볍게 플레이할 수 있는 캐주얼 게임이 등장하며 새로운 수익모델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넷마블도 캐주얼 게임을 위한 수익모델 창출을 고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2년 자사 게임 ‘캐치마인드’에 업계 최초로 부분 유료화라는 모델을 도입했다. 부분 유료화는 쉽게 말해 게임 자체는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게임을 하는 동안 사용 가능한 아이템을 유료로 판매하는 시스템이다. 부분 유료화 전략은 성공으로 귀결됐다. 무료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탓에 동시접속자 수가 늘어났고, 이를 기반으로 수익성 역시 크게 증가했다. 넷마블의 부분 유료화 전략을 시작으로 국내뿐 아니라 소니, 마이크로소프트,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일렉트로닉아츠 등 글로벌 게임사들도 부분 유료화 모델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혁신적인 시도는 넷마블을 단숨에 국내 게임업계의 대표 플레이어로 성장시켰다. 특히 지난 2004년 넷마블은 CJ그룹에 인수되며 날개를 달게 된다. CJ그룹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등에 업은 넷마블은 사명도 ‘CJ인터넷’으로 바꾼다. 물론 게임 서비스는 ‘넷마블’의 이름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거칠 것 없던 넷마블이 갑작스런 추락을 경험하게 된 근본적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게임업계 관계자 A씨는 이렇게 분석했다.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발 빠른 의사결정이 어려워지다 보니 급변하는 트렌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죠. 또 게임이라는 콘텐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영진은 헛발질을 하기 일쑤였어요. 그저 과거에 성공한 콘텐츠의 사업모델을 그대로 답습하는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물론 당시 전반적인 게임시장 상황도 좋지 못했어요. 정부의 게임 규제가 본격화된 시점이 바로 그 무렵이었죠.”
넷마블 내부에는 패배주의가 엄습했다. 계속된 실패로 직원들의 사기는 바닥까지 추락했다. 이는 상상 이상으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당시 근무했던 넷마블 직원의 심경을 짤막하게 소개한다.
“수년간 실패만 거듭했습니다. 매년 비전, 전략, 도전을 선언했지만 유명무실한 채로 잊혀졌습니다. 솔직히 회사가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회사에 대한 신뢰감도 잃어버렸습니다. 열정도 식었습니다. 그나마 쥐고 있던 서든어택마저 놓친 상황에서 무력감마저 듭니다.”
반전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때 넷마블의 구원투수가 등장했다. 바로 넷마블 창업자인 방준혁 의장이었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방준혁 넷마블 의장(오른쪽)과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구원투수로 컴백한 방준혁 의장넷마블이 급격한 쇠락을 겪기 시작한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방준혁 의장이 잠시 넷마블을 떠난 2006년부터였다. CJ에 넷마블을 매각한 이후 방 의장은 건강 악화로 인해 회사를 떠났다. 방 의장은 당시 “넷마블 창업 후 6년간 단 하루의 휴가도 없이 일해왔다”며 “정말 쉬고 싶어 회사를 떠난다”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선택은 향후 넷마블이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을 충분히 마련해놨다는 방 의장 특유의 자신감에서 비롯됐다. 2006년 당시 넷마블의 시가총액은 7,700억 원에 육박했다. 게임 포털로서는 부동의 1위였고, ‘서든어택’, ‘마구마구’ 등 핵심 게임들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방 의장의 퇴임 의지는 확고했다. 실제로 퇴임 이후 방준혁 의장은 게임과 무관한 사업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이 만들고 키워온 넷마블과 동종업계에서 경쟁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5년간 방 의장은 두문불출했다. 그 사이 어떤 일을 했는지는 지금까지도 명확하지 않다. 그럼에도 여러 가지 설이 무성했다. 그만큼 게임업계에서 그가 보여준 영향력이 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넷마블의 갑작스러운 추락은 방 의장의 복귀로 이어졌다. 특히 서든어택 재계약이 실패로 돌아가자 CJ 측에서 먼저 방 의장에게 복귀를 요청했다. 자칫 문을 닫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구원투수가 되어 달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는 흔쾌히 제안에 응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방준혁 의장은 이렇게 회상한다. “제가 넷마블 복귀를 결정했을 당시 주변 사람들은 모두 저의 복귀를 만류했습니다. ‘침몰하는 잠수함에 왜 다시 올라타려고 합니까? 그러다 당신도 같이 침몰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죠. 하지만 저는 넷마블이 그냥 잠수함이 아닌 ‘핵잠수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침몰하는 핵잠수함도 엔진을 고치면 다시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확신했죠.”
그렇게 2011년 다시 회사로 컴백한 방 의장은 우선 사내에 팽배한 패배주의를 없애는 데 집중했다. 즉각 회의를 소집하고 새로운 먹거리 창출에 나섰다.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하지만 방 의장의 머릿속에는 이미 위기를 타개할 묘책이 있었다. 바로 ‘모바일 게임’이었다. 이미 모바일 게임 시장은 온라인 게임을 위협할 수준의 무서운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었다. 방 의장이 모바일 게임에 관심을 두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방 의장의 계획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그가 없던 사이 급전직하로 추락한 실적 탓에 그룹에서 새로운 투자에 난색을 표명한 것이다. 이때 방 의장은 직접 400억 원 수준의 사재를 털어 게임 개발 지주회사 ‘CJ게임즈’를 설립하는 승부수를 던진다. 이후 방준혁 의장은 CJ게임즈를 기반으로 유망 개발사를 인수하는 한편 기존 개발사들의 사업을 모바일 체제로 재편했다. 넷마블 내부에는 백영훈 사업총괄 부사장이 전담하는 ‘모바일사업본부’를 출범시키며 컨트롤타워 역할을 일임했다.
이 같은 방 의장의 전략은 2012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랐다. 소위 ‘대박 콘텐츠’가 연이어 탄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방준혁 의장이 넷마블 NTP 행사에서 그간의 모바일 게임 성과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모바일 게임 시장 문을 연 넷마블넷마블 모바일 사업의 스타트를 선언한 게임은 모바일 레이싱 게임 ‘다함께 차차차’였다. 2012년 12월 출시한 다함께 차차차는 불과 17일 만에 최단기간 다운로드 1,000만 기록을 세웠다. 다함께 차차차를 필두로 이후 출시된 ‘마구마구2013’, ‘모두의 마블’, ‘몬스터 길들이기’ 등의 게임들 역시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특히 몬스터 길들이기와 모두의 마블은 흥행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입증하며 ‘2013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 최우수상과 인기상을 휩쓸기도 했다.
넷마블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2013년 한 해에만 1,000만 다운로드 게임을 3종이나 선보였고, 구글 플레이 스토어 최고 매출 1위에 4개의 게임을 올렸다.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을 연 것은 물론 사실상 시장을 지배하는 수준의 성과를 과시했다.
하지만 방준혁 의장은 만족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이미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을 향하고 있었다. 여기서 하나의 호재가 발생한다. 중국 굴지의 IT기업인 ‘텐센트’로부터 5,300억 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한 것이다. 글로벌 공략을 위한 실탄이 확보되자 CJ E&M은 게임사업부문이었던 넷마블을 물적분할하고 이후 CJ게임즈와의 합병을 통해 지난 2014년 10월 독립법인 ‘넷마블게임즈’를 설립한다. 이는 글로벌 시장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한 조직 개편의 일환이었다.
이후 넷마블은 글로벌 행보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2015년 7월에는 미국 모바일 게임사 잼시티(Jam City, 옛 SGN)에 약 1억3,000만 달러를 투자하며 글로벌 퍼블리싱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또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의 모바일 게임 스타트업을 발굴해 각종 지원 사업을 펼쳤다. 특히 지난해 12월에는 미국 모바일 게임사 ‘카밤(Kabam)’의 밴쿠버 스튜디오 인수에 합의했다. 올해 1분기 중 인수가 완료될 경우 국내 게임사의 인수합병(M&A) 역사상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넷마블은 카밤 인수를 통해 북미 지역 모바일 역할수행게임(RPG) 시장을 적극 공략하겠다는 계획이다.
넷마블의 기존 게임 콘텐츠도 해외 시장에서 고공비행을 이어갔다. 넷마블은 지난 2015년 11월에는 구글 플레이 스토어 기준 ‘글로벌 게임사 월간 최고 매출 1위’에 올랐다. 그리고 같은 해 구글 플레이 스토어가 선정한 ‘2015 올해의 게임’에 레이븐, 이데아, 마블 퓨처파이트 등 넷마블 게임 3종이 선정됐다. 또 지난해 6월에는 모바일 게임 ‘세븐나이츠’가 국내 모바일 게임 사상 최초로 일본 시장에서 매출 톱3에 진입하기도 했다.
넷마블의 글로벌 전략은 방준혁 의장이 사실상 진두지휘했다. 그는 이른바 ‘현지형(形)’이라는 단어를 넷마블 글로벌 전략의 핵심 키워드로 내세우고 있다. 지난 1월 넷마블 NTP(Netmarble Together with Press) 행사에 참석한 방 의장은 넷마블 특유의 ‘현지형’ 전략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제는 철저한 현지화를 통한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그 나라의 게임을 만들어야 합니다. 대다수 게임사들은 국내에서 성공한 콘텐츠를 소위 ‘현지화’해 글로벌 시장에 선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이러한 전략은 성공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중국 유저들은 게임 시스템을 중요시하고, 일본 유저들은 게임 내 밸런스를 중요시합니다. 아무리 국산 게임을 이에 맞게 수정한다 해도 미세한 차이까지 바꾸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거죠. 넷마블은 아예 처음부터 중국, 일본 등 현지 유저를 타깃으로 게임을 개발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넷마블이 출시한 주요 모바일 게임 이미지.
실제로 넷마블은 중국, 일본, 북미 시장에 각각 다른 스탠스로 공략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텐센트와 기획 단계부터 협업해 100% 중국형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리니지2 레볼루션의 경우, 중국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의 게임이 될 예정이다. 일본에서는 현지에서 인기가 높은 캐릭터 등 지적재산권(IP)을 확보해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총 4종의 게임이 출시될 예정인데, 특이한 점은 이 게임들은 국내에 출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미와 유럽시장의 경우 아직 현지 유저들의 감성과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판단하에 현지 IP 및 최근 인수한 현지 개발사를 통해 콘텐츠를 선보이며 시장 이해도를 높일 계획이다. 더불어 레볼루션 출시를 통해 아직은 비주류로 불리는 모바일 MMORPG 시장 선점에도 나설 방침이다.그동안 게임은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다. 여전히 온라인·모바일 게임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썩 곱지 못하다. 일부 액션게임은 마약과 같은 중독성으로 폭력성을 유발한다는 지적에 뭇매를 맞는다. 고스톱, 포커 등 소위 ‘고포류’ 게임은 도박이라는 단어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게임을 즐기는 청소년들은 공부와 담을 쌓은 문제아로 낙인 찍히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게임산업은 국가 차원에서 양성해야 할 핵심 콘텐츠 산업 중 하나로 손꼽혀왔다. 지난해 기준 글로벌 모바일 게임 시장 규모는 406억 달러(약 46조 5,000억 원)에 이른다. 이 중 아시아 지역의 점유율은 61%로 사실상 전 세계 게임시장을 이끌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기술력으로 무장한 국내 게임사들의 선전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런 까닭에 넷마블의 성공은 게임업계를 넘어 국내 콘텐츠 산업 전반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말한다. “기획 단계부터 거대한 시장을 타깃 삼아 개발에 돌입하는 넷마블의 전략은 다른 콘텐츠 시장에서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수년간 이어져온 PC 일변도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단숨에 모바일로 바꾼 넷마블의 과감한 결단 역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죠.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넷마블이 국내 문화 콘텐츠 산업 전반에 새로운 자극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넷마블은 현재 상반기 중 국내 증시 상장을 목표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시장에서는 넷마블의 기업가치가 10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상장을 통해 마련된 자금은 M&A와 글로벌 유명 IP 확보에 투자할 계획이다. 궁극적으로는 글로벌 1등 모바일 게임사인 ‘슈퍼셀(Supercell)’을 따라잡아 진정한 글로벌 플레이어로 거듭나겠다는 청사진도 내놓았다.
넷마블의 마스코트는 노란색 공룡이다. 과연 넷마블의 노란 공룡이 국내를 넘어 글로벌 게임 시장을 집어삼킬 수 있을까? 거침없는 넷마블의 행보를 주목해보자.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