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박근혜, 침묵 속 靑 퇴거…참모들에겐 "수고했다"

헌재 결정 수용·국민통합 메시지 등 일체 언급 없어
일각선 "기각 ·각하 예상했다가 큰 충격" 분석도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사흘째인 12일 청와대 왼편에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기가 내려져 있다. 오른편에 위치한 한 방에는 하루종일 실내등이 켜져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은 12일 오후 청와대를 퇴거해 서울 삼성동의 사저로 들어갔다. 이날부터는 그야말로 아무런 사법적·정치적 보호막이 없는 민간인이다. 파면된 전직 대통령 신분에서 검찰의 수사를 받아야 하기에 박 전 대통령의 삼성동 생활은 초기부터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의 딸로 18년, 대통령으로 4년 동안 머물던 청와대를 이날 떠나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 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는 입장 표명도, 국민통합을 당부하는 메시지 발표도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의 이 같은 침묵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온다. 첫째, 박 대통령의 침묵이 헌법재판소 판결에 대한 ‘무언의 항의 표시’가 아니냐는 관측이다. 헌재 결정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을 담아 지난 10일 헌재 결정부터 이날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은 1월25일 한 인터넷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국정농단 게이트에 대해 “특정 세력들의 음모로 기획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법적 문제에 대해서는 “검찰이 억지로 엮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이번 헌재 판결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만약 박 전 대통령이 어떤 형태든 대국민 고별사를 발표하기로 했다면 여기에는 형식적으로나마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는 내용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속마음과는 달리 헌재 결정에 동의하는 내용을 담아 대국민 메시지를 내느니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청와대를 떠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해석된다.

둘째, ‘충격설’이다. 박 전 대통령은 10일 선고 직전까지도 헌재가 이번 탄핵심판을 기각 또는 각하할 것으로 굳게 믿었다고 전해진다. 참모진들도 5대3 또는 4대4로 탄핵심판이 기각 혹은 각하될 것이라고 박 전 대통령에게 막판까지 보고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은 TV 생중계로 선고 장면을 보고도 믿기지 않아 일부 참모들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관계를 거듭 확인하기까지 할 정도로 기각을 확신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재판관 전원일치 파면 결정이 나오자 큰 충격을 받았고 아직까지 그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의 한 참모는 “박 전 대통령의 충격이 컸던 것은 사실”이라며 “메시지를 준비할 경황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이 언론의 퇴거장면 취재를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10일부터 각 언론사의 취재 차량은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청와대와 서울 삼성동 사저 주변에 진을 쳤다. 일부 방송들은 헬리콥터를 띄워 박 대통령의 퇴거 행렬을 따라가며 촬영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 같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 취재진이 일부라도 철수하기를 기다려 새벽녘에 출발하는 시나리오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12일 오후 이삿짐이 내려지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박 전 대통령의 퇴거 시점을 놓고 청와대 안팎은 막판까지 긴박하게 돌아갔다. 박 전 대통령 퇴거 장면을 취재하려고 모여든 기자들은 이날 퇴거 여부와 시간을 확인하느라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당초 박 전 대통령의 퇴거는 13일 오전 이뤄질 것으로 관측됐다. 그러다 이날 오후 박 전 대통령이 오후4~6시 사이 떠난다는 얘기가 돌았지만 청와대 참모들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결국 오후5시부터는 청와대 측이 자유한국당에 “오후6시에 박 전 대통령이 퇴거한다”고 알렸다는 일부 매체 보도까지 나왔지만 청와대는 “확정되지 않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떠날 것을 결심하고 오후4시께 비서동인 위민관을 찾아 참모들과 작별 인사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참모들과 마지막 기념사진도 찍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수고했다. 고맙다”는 말만을 했을 뿐 정치적인 의미가 있는 말은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박 전 대통령은 급히 공사를 마친 삼성동 사저에 들어섰지만 이 집은 경호 면에서는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적당한 시점에 다른 장소로 거처를 옮길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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