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5위 투자은행의 사망을 선고한 통화 내용은 월가에 유명한 일화다. 미국 관치금융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 통화 후 정확히 6개월 뒤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다. 베어스턴스의 몰락은 닥쳐올 글로벌 금융위기의 전주곡이었다. 월가의 ‘곰 사냥’은 냉혹했다. 유동성 고갈 루머가 나돌더니 누군가 자금회수에 들어가자 너 나 할 것 없이 돈을 뺐다. 대규모 자금인출, ‘뱅크런’의 일종이다. 단 4일 동안 방어에 쏟아부은 자금은 183억달러.
초유의 사태는 음모론을 키우게 마련이다. 호사가들은 금융황제 로스차일드 가문의 공격설과 ‘흙수저’ 집합소인 베어스턴스의 왕따설을 입에 올린다. 베어스턴스 몰락 1년 만에 나온 ‘베어 트랩(BEAR TRAP)’은 미스터리를 증폭시켰다. 베어스턴스 전 직원이 쓴 이 책은 미 금융당국이 쳐 놓은 덫(트랩)에 걸렸다는 게 요지다.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에 대한 월가 공동의 협조융자를 거부해 금융당국에 미운털이 박혔다는 소문과 같은 맥락이다. 베어스턴스가 왜 첫 희생양이 됐는지는 아직도 분분하다. 다만 그것이 음모론이든 뭐든 간에 자본시장은 약육강식의 정글이고 월가는 그렇게 진화해왔다. 오늘이 베어스턴스가 몰락한 지 9년 되는 날이다. /권구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