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성장엔진 위한 소프트 인프라] 'AI 시대' 일자리 문제 불거지는데..법·제도 논의조차 못해

<2> 인공지능의 미래-사회시스템의 대변혁
선진국선 부작용 최소화 위해 윤리·법규 적극 마련
한국은 기술개발부터 뒤처져 소프트인프라 손못대

# 지금부터 50년 전인 지난 1968년에 개봉한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주요 출연자로 인공지능(AI) 컴퓨터가 등장한다. 우주선 디스커버리호에 탑재된 ‘할(HAL) 9000’이라는 이름의 이 AI 컴퓨터는 비행 도중 고장이 나자 자신을 정지시키려는 승무원을 우주로 던져버린다. 할은 자신을 불신하는 인간을 내쫓기도 하고 상황이 불리해지면 화해를 청하기도 한다. 할처럼 생각하고 감정을 지닌 AI 컴퓨터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지만 미래에는 인간과 AI 로봇이 공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화두를 던진 것이다.

# 올해 초 미국 캘리포니아주 아실로마에서는 AI 전문가회의가 열렸다. 회의 후 전문가들은 AI 개발의 23개 원칙을 담은 ‘아실로마 AI 원칙’을 제정했다. 이 원칙에는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를 비롯해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 등 2,000여명의 과학·기술계 인사가 지지 서명했다. 아실로마 AI 원칙은 AI 연구목표가 이로운 지능을 창조하는 것이며 살상 가능한 자율적 무기에 대한 군비경쟁을 지양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터미네이터’에서처럼 AI 기술이 인간을 위협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호소인 셈이다.

AI와 로봇으로 대표되는 첨단기술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이로 인한 사회 시스템 변화와 부작용에 대한 수많은 담론이 양산되고 있다. 먼 미래의 일로만 받아들여졌던 AI와 로봇이 현실의 문제가 되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분야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인간을 대신해 커피를 타주는 로봇과 간단한 전화상담이 가능한 로봇이 등장하고 드론으로 택배 배달이 가능해지면서 당장 일자리 감소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여기에 자율주행차로 인한 사망사고가 발생하고 해킹으로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이 커지면서 AI 기술을 둘러싼 윤리 문제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세계 각국이 급팽창하는 AI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연구개발(R&D)과 투자를 늘리는 동시에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법규·제도 등 소프트인프라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관련 R&D와 논의에서 빗겨나 있어 AI 변방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AI가 실현할 미래 삶의 변화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과 부정적인 시각이 교차한다. 자율주행차나 드론, 개인형 로봇 등이 상용화될 경우 인간의 삶이 한층 풍요로워질 수 있고 사물인터넷(IoT)과 웨어러블 기기 등에 AI가 접목되면 인간의 역량을 강화해 문제처리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낙관론이 우세하다.

반면 AI 기술의 발전과 활용으로 사회·경제·노동·산업·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구조적 변화가 초래돼 부작용도 만만찮을 것이라는 비관론 또한 존재한다. AI로 오는 2020년까지 200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지는 대신 710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대표적이다. IBM ‘왓슨’처럼 의사를 대신해 환자를 진료하는 시대가 도래한 상황이다. 감동근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미래 일자리 감소는 비단 AI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면서 “인간이 가진 장점이 상실된 분야는 로봇이 대체하게 될 것이고 AI로 인해 새로운 일자리도 생길 것이기 때문에 상황에 맞춰 대응하면 된다”고 말했다.

선진 각국은 오래전부터 AI와 로봇의 오작동이나 오남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통제하고 윤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2005년 ‘에틱보츠(Ethicbots)’ 프로젝트와 ‘로보로(Robolaw)’ 프로젝트 등을 통해 AI와 관련된 기술윤리와 법 제도 연구를 진행했고 일본 인공지능학회도 지난달 AI 윤리지침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7년 로봇윤리헌장 제정을 추진했으나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로봇윤리 제정과 법규·제도 마련 같은 소프트인프라 구축은 향후 AI와 공존하면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데 필요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AI 기술 분야에서도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AI 관련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데다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도 경쟁국에 비해 크게 뒤져 있다. 클래리베이트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AI 관련 국가별 논문 발표 규모에서 우리나라는 중국·미국의 20%에 못 미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 따르면 AI 전반 기술의 세계 최고 수준을 100으로 봤을 때 국내 평균은 66.3%에 불과하고 4.4년의 기술격차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창조경제전략센터 연구위원은 “지난해 알파고 쇼크 이후 AI에 대한 국민 인식수준은 크게 높아졌지만 그동안 유행만을 좇던 연구개발 관행 때문에 정작 AI 연구인력은 크게 부족한 상황”이라면서 “AI 기술의 활용과 의존도가 갈수록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경쟁력 확보를 위한 기술개발 지원은 물론 법제도 정비, 개선, 신규 개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성행경기자 sain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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