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400억원짜리 해외공장 증설 사업을 수주한 플랜트엔지니어링 업체 T사도 아직 착공 시기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국책보증기관 모두 “플랜트는 구조조정 업종”이라는 이유를 들어 공사이행보증계약서 지급을 미루고 있어서다. T사 대표는 “우리 회사는 창사 20년 가까이 되는데 매년 매출이 오를 정도로 우량한 기업”이라며 “보증기관들이 단지 구조조정 업종이라는 이유로 공사이행보증서를 발행해주지 않는 것은 이해하지 못할 처사”라고 호소했다.
이처럼 중소 플랜트 업체들이 이행보증서를 받지 못하는 것은 국내 보증기관들이 기업 재무상황이나 사업 수익성보다 획일적인 기준을 앞세워 수출보증에 소극적이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조선업 구조조정에 이어 잇따른 대형 보증사고, 최근 정권 공백기까지 겹치면서 국내 보증기관들이 한층 까다로운 기준을 들이대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대표적 수출보증 금융기관인 수출입은행은 2015년 22조원이었던 해외수주 보증규모가 지난해 12조4,0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국내 한 국책 보증기관 관계자는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업종에 섣불리 보증을 서주기는 힘든 상황”이라며 “우리로서는 최대한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사정이 이렇자 중소기업 지원부처인 중소기업청은 금융위원회 등에 적극적인 수출보증을 요청하고 있지만 별 효과는 없는 실정이다.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국면을 맞아 경제 컨트롤타워가 제 기능을 못하고 공공 부문 전반에 ‘보신주의’가 팽배한 탓이다. 중기청 관계자는 “요즘 중소기업 간담회를 하다 보면 보증과 관련한 애로 사항을 호소하는 곳이 많다”며 “우리도 금융위 등에 지속적으로 건의를 하고는 있지만 아직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영일기자 hanu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