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연준의 금리 인상은 이미 시장에서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던 만큼 시장은 인상 자체에 영향을 받기보다 ‘비둘기적’인 추가 인상계획에 안도하며 이례적인 랠리를 보였다. 이날 미국 뉴욕증시의 3대 지수는 일제히 상승했으며 뒤이어 열린 아시아증시도 대부분 오름세로 마감됐다. ★관련기사 20면
다만 미국이 저금리 시대의 막을 내리고 본격적인 금리 정상화 궤도에 들어섬에 따라 지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에서 풀린 값싼 자금을 빨아들여온 신흥국에는 비상이 걸렸다. 특히 경기둔화와 자본유출 우려에 시달리는 중국은 당장 자금시장 금리를 올리며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16일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달 3일 이후 한달여 만에 역레포(역환매조건부채권) 7일물과 14일물, 28일물의 금리를 각각 10bp(1bp=0.01%포인트)씩 추가 인상했다. 이는 연준의 금리 인상을 계기로 중국 내 자본이 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억제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홍콩과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연합(UAE)·바레인 등 달러화와 환율을 고정하는 달러 페그제 국가들도 연준에 따라 일제히 금리를 올렸다.
미국 금리, 3년간 3차례씩 3%까지 오른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15일 FOMC 정례회의에서 연방기금 금리를 0.75∼1.00%로 인상한 후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금리 인상의) 간단한 메시지는 미국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The simple message is the economy is doing well)”이라며 미국 경제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실제 미국 경제는 실업률이 완전고용 기준(4.8%)을 밑도는 4.7%까지 떨어지고 물가도 연준 목표치인 2%에 다가서며 더 이상 저금리를 통한 경기부양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성장 국면에 접어든 상태다.
이 때문에 시장의 관심은 일찌감치 3월 금리 인상 여부보다 앞으로의 금리 인상 속도에 쏠려왔다.
이 궁금증에 대해 옐런 의장은 “경제가 지금처럼 계속 호전된다면 약 3∼4개월에 한 번씩 금리를 인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비교적 명쾌한 답을 제시, 시장에 남아 있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데 일조했다. 그는 또 “예상대로 계속 좋아지면 연준의 기준금리를 장기 중립적 목표인 3%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점진적으로 올리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발언과 연준이 공개한 점도표(dot plot)에 따르면 미국 기준금리는 올해 두 차례 추가로 올리고 앞으로도 2019년까지 연간 3회씩 인상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구상대로라면 2019년 말 무렵에는 기준금리가 3%에 달하게 된다. 옐런 의장은 또 일각에서 우려되는 급진적인 금리 인상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는 “2004년 중반에 시작된 금리 인상 국면에서는 FOMC 회의 때마다 금리를 올렸지만 이번에는 그런 상황을 상정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도미노’ 긴축 예고...신흥국은 비상
연준이 중장기적인 금리 인상 사이클로 들어섬에 따라 일본과 유럽연합(EU) 등 아직까지 경기부양을 위한 돈 풀기에 나서고 있는 선진국들도 출구를 모색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금융위기 이후 지난 10년 가까이 전 세계로 풀린 자금이 대이동을 시작하면서 신흥국을 중심으로 금융불안이 가시화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 셈이다.
국제금융협회(IIF) 자료를 토대로 한국은행이 25개 신흥국 자금 흐름을 분석한 결과 2009년 금융위기 이후 5년간 신흥시장으로 유입된 자금은 총 6조2,000억달러(약 7,000조원)에 달한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저금리 정책으로 풀린 돈이 일제히 신흥국으로 유입되면서 각국 자산시장은 값싼 유동성 덕에 고공행진을 해왔다.
하지만 미국 기준금리가 1%를 찍으며 글로벌 초저금리 시대의 종말이 확인된 만큼 당장 신흥국에서 미국으로 상당 규모의 자금 U턴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국 인민은행이 지난달 6년 만에 처음으로 자금시장 금리를 올린 데 이어 16일 한달 만에 추가 인상에 나선 것도 미 연준의 금리 인상이 중국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는 자본유출을 악화시킬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중앙은행들이 도미노 긴축 움직임을 보일지도 주목된다. 미 달러화에 고정하는 환율제도를 운영하는 홍콩은 이날 기준금리를 1.25%로 0.25% 높였으며 페그제 국가인 사우디도 역레포 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UAE·바레인·쿠웨이트 등도 이날 일제히 정책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일본은행(BOJ)과 유럽중앙은행(ECB)이 돈줄 죄기에 합류할 가능성도 있다. BOJ는 이날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일단 -0.1%인 정책금리를 동결하고 금융완화 정책도 유지하기로 했지만 일각에서는 BOJ가 암암리에 자산매입 규모를 줄여 양적완화 축소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역시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에 달해 목표치를 4년 만에 돌파하는 등 ECB의 출구 찾기를 위한 여건이 갖춰지는 양상이며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 이후 파운드 가치 하락으로 물가상승 압력이 커진 영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도 높아진 상태다.
남은 리스크는 트럼프노믹스와 국제유가
미국의 금리 인상이 연준의 구상대로 “점진적”인 속도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최대 변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경제정책이다. 연준은 금리 인상 속도 조절에 최대한 신중한 입장이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대대적인 감세와 인프라 투자를 비롯한 재정확대로 경기과열을 초래할 경우 금리 인상 속도가 연준의 계획보다 빨라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미국의 가파른 금리 상승이 달러화 급등과 신흥국에서의 급격한 자본유출을 초래하면서 글로벌 경제에 또 다른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
옐런 의장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재정정책 변화가 (경제) 전망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옐런 의장이 앞으로도 경제지표를 통화정책의 근거로 삼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과 달리 사실상 공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정정책으로 넘어갔다고 지적했다.
변화가 예고된 연준 인사도 향후 금리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음달이면 연준 이사 7명 중 3자리가 비는데다 내년 2월에는 옐런 의장, 6월에는 스탠리 피셔 부의장의 임기가 각각 종료된다. 경기부양과 상충되는 금리 인상 정책이 못마땅한 트럼프 대통령이 입맛에 맞는 연준 이사를 임명해 연준을 채운다면 3%를 목표로 하는 연준의 금리 인상 행보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요인은 국제유가다. 국제유가 회복에 힘입어 주요 선진국의 물가가 상승세를 보여왔지만 올 들어 국제유가는 미국 셰일유 생산 증가로 연초 대비 14%가량 하락한 상태다. 유가 하락에 물가가 다시 발목을 잡힌다면 금리 인상 속도는 예상보다 더뎌질 수 있다.
/신경립 국제부장 kls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