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금융당국은 무능했고 투자자는 무지했다

김현수 증권부장



미국 금리가 올랐다. 다행히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장기목표인 3% 수준까지 금리를 점진적으로 올릴 것”이라고 말하며 시장은 안도의 숨을 내쉬지만 가계의 한숨은 더 깊어진다. 최근 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가 4년 만에 최대로 벌어졌다. 금리가 내릴 때나 오를 때나 부담은 고스란히 가계가 떠안는 구조인 셈이다.

금융시장에서 소외 받는 가계를 위해 정부는 때만 되면 세제혜택 금융상품을 만든다. 1년 전에도 금융당국은 국민재테크 상품으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출시했다. ISA를 이사라고 부르며 금융사들은 돈을 옮기라고 부추겼다.


1년이 지난 일임형 ISA의 성적표는 처참하다. 수익률은 2.08%를 기록했다. 일임형 ISA 가입금액의 90%가 은행에 몰려 있다 보니 실제 수익률은 1.1%에 불과하다. 기준금리(1.25%)보다 낮은 수익률이다. 금융사와 상담을 통해 금융상품을 담는 신탁형 ISA도 투자금액의 79.7%가 예·적금이다 보니 수익률이 기준금리 수준에 그친다. 높은 대출금리에 허덕이는 가계를 위해 세제혜택을 더해 국민재테크 상품을 만들었지만 낮은 수익률은 실망만 더했다. 일부에서는 ISA의 상품구조가 금융사의 수수료만 챙기게 설계돼 세금만 낭비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ISA의 실패는 예견됐다. 금융당국은 무능했고 투자자는 무지했다. 금융사는 욕심을 부렸다. 지난해 9월 IBK기업은행의 일임형 ISA 수익률 공시 오류는 금융당국의 무능을 그대로 드러내며 투자자들을 ISA에서 발을 돌리게 만들었다. 수익률 오류 직전 6월 22만9,000좌에 이르던 월별 가입계좌수는 7월 1만7,000개로 뚝 떨어졌고 12월과 올해 1월은 해지가 신규보다 많아졌다. 애초 정부의 주도로 과도한 실적 위주의 가입이 진행되다 보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이다.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지 않은 상품 설계는 두고두고 ISA의 발목을 잡았다. ISA 도입에서 금융당국은 예·적금을 포함시켰다. 국민의 자산증식과 자본시장 활성화라는 취지는 원금보장에 묻혀 버렸다. 투자자들은 ISA를 세제혜택을 주는 5년 만기 적금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보다 2년 앞서 ISA를 도입한 일본은 투자대상을 주식과 펀드에 한정시켰다. 그럼에도 첫해 가입자가 825만명, 가입액은 29조8,176억원에 이른다. 인구를 감안해도 우리보다 3배가량 많은 가입자와 가입금액이다. 수익률은 11.6%에 달한다.

‘무능통장’ ‘실패통장’으로 전락한 ISA가 시즌2를 준비하고 있다. 시즌 2는 ISA가 출시된 지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거론되기 시작했다. 금융당국은 오는 5월 ISA 도입성과를 분석한 뒤 정부의 세제개편안이 마련되는 9월 ‘ISA 시즌2’의 개선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번에도 세제혜택을 앞세워 ISA를 활성화시키겠다고 한다. 비과세 한도를 200만원에서 400만원으로 늘리고 가입대상도 미성년·은퇴노년층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5년 동안 목돈을 묶어야 한다는 불안감 해소를 위해 중도인출도 논의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ISA 시즌 2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우선 ISA의 성격을 명확히 해야 한다. 국민재산증식과 자본시장 활성화라는 기본 목적에 충실하게 일본과 같이 예·적금을 투자대상에서 제외하거나 투자 한도를 설정해야 한다. 한국형 ISA가 노후보장을 위한 저축이 아닌 투자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다음은 비과세 한도를 늘려야 한다. 마지막 요건은 역시 수익률이다. 은행 예·적금보다 못한 수익률이라면 ISA는 불필요한 상품이다.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물론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회복되는 것이 우선이다. 금융사들도 ISA가 한 번 팔고 끝인 상품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파격적인 변화가 없다면 ISA 시즌 2는 또 실패다./hs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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