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김선욱의 베토벤 독주회에 대해 일부 평론가와 음악애호가들이 혹평을 한 가운데 김선욱이 직접 페이스북에 관련 글을 남겨 화제다.
김 씨는 20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라이브 연주는 음반과는 다르기에, 홀의 울림에 따라, 피아노의 상태에 따라 변수가 많다”며 “만족스러운 부분도, 아쉬운 부분도 스스로 잘 알고 있기에 이 모든 경험들이 피가 되고 살이 되리라 믿는다”고 적었다.
18일 독주회는 김선욱이 10년간 꾸준히 연구했던 베토벤 소나타 가운데서도 가장 대중적인 작품인 ‘비창’ ‘월광’ ‘열정’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최은규 음악평론가는 이날 공연에 대해 연합뉴스 리뷰를 통해 “유명 명곡을 연주하며 과감한 시도를 하려면 기존에 이 명곡들에 익숙해져 있는 관객들의 귀를 설득할 수 있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 김선욱의 베토벤 연주에선 때때로 그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며 그가 연주한 ‘월광 소나타’에 대해서도 “김선욱의 연주를 달빛에 비유한다면 그 달빛은 자연적인 달빛이 아니라 인공조명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평했다.
이에 대해 김선욱은 “호평도, 혹평도 존중하며 감사드린다”고 전제한 뒤 ‘월광’에 대한 대중의 선입견이 베토벤의 본래 창작 의도와 거리가 있을 수 있다는 의문을 제기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작품번호 27의 2, 즉 편의상 ‘월광’으로 불리는 소나타의 1악장 제목은 1832년, 소위 지금으로 말하면 음악칼럼니스트이자 시인인 루드비히 렐슈타트가 마치 루체른 호수에 비친 달빛과 같다는 표현을 써서 180년이 지난 지금도 ‘월광’ 소나타로 불리고 있다”며 “오직 베토벤이 붙인 부제는 ‘판타지풍의 소나타’ 일 뿐이고 저는 1악장을 연주할 때 호수에 비치는 달빛처럼 연주하고 싶은 마음은 0.1%도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21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김선욱은 “베토벤의 세 소나타를 나만의 아이디어로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 음반도 내고 연주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해도 삶은 그렇게 길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청중이 듣고 싶은 음악만 연주한다는 것은 회의적이다. 연주자가 확신을 가지면 많은 분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피아니스트 김선욱 페이스북 글 전문]
먼저, 연주회에 와 주신 모든 관객분들, 인터넷 생중계로 집에서, 밖에서 보신 수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라이브 연주는 음반과는 다르기에, 홀에 울림에 따라, 피아노의 상태에 따라 변수가 많습니다. 1-2년에 한 번정도? 스스로 ‘아, 이정도면 정말 잘한 것 같다’ 라고 자평할 때가 간혹 있지만 (정말 드물게 말이죠)
만족스런 부분도, 아쉬운 부분도 스스로 잘 알고 있기에 이 모든 경험들이 제 연주에 피가 되고 살이 되리라 믿습니다.
호평도, 혹평도 존중하며 감사드립니다. 한 가지 전해드리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작품번호 27의 2, 즉 편의상 ‘월광’으로 불리는 소나타의 1악장입니다. 이 ‘월광’이라는 제목은 1832년, 소위 지금으로 말하면 음악칼럼니스트이자 시인인 루드비히 렐슈타트가 마치 루체른 호수에 비친 달빛과 같다라는 표현을 써서 180년이 지난 지금도 ‘월광’ 소나타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선입견이라는 것은 무섭습니다.
베토벤은 1801년에 이 곡을 작곡했지요. 과연 31년이 지나 렐슈타트가 이름붙인 ‘월광’이랑 베토벤의 의도가 비슷할까요? 오직 베토벤이 붙인 부제는 ‘판타지풍의 소나타’ 일 뿐입니다. 저는 1악장을 연주할 때 호수에 비치는 달빛처럼 (굉장히 추상적이지요) 연주하고 싶은 마음은 0.1%도 없습니다. 오히려 베토벤이 이 곡을 작곡할 때 스케치로 모차르트 돈조반니 1막 초반의 아리아 중에 안단테 부분 c minor 코드를 반음 올려 c# minor 로 오마주했다는 추정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셋잇단음표 위로 선율의 리듬도 거의 같아요)
그리고 템포에 관해 제 생각을 전하자면, 저는 베토벤의 템포기호에 추가로 자필악보에서의 마디의 간격을 봅니다. 똑같은 알레그로나, 안단테라도 연주자마다 표현하는 템포는 다르겠지만 - 베토벤은 자신의 생각하는 호흡을 마디의 여백과 음표의 간격을 통해 담았다고 믿습니다.
23번 소나타, 즉 ‘열정’소나타 (이것도 베토벤이 붙인게 아니에요)로 알려져 있는 이 곡의 1악장 한 프레이즈를 베토벤이 써 놓은 간격과 그 옆, 렐슈타트로 인해 지금까지 ‘월광’으로 불리는 소나타의 마디 간격을 보세요. 음표의 갯수로 치면 같은 페이지에 악보 2인 ‘월광’소나타가 훨씬 많아요. 근데 악보1은 ‘알레그로 아사이’, 악보 2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입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베토벤의 악보에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많이 남겨놓았습니다. 그 여지가 감성적 감상보다는 프레이즈, 아티큘레이션, 저 수많은 지시기호에서 다양한 의미를 풀어나가야 하지 않을까요?